총선을 앞두고 김포를 서울시에 편입하겠다는 정치구호가 난무하고 서울 주변 위성 소도시들까지 들썩인다. 집값 비싼 서울로 향하는 차편을 마련하기 위해 GTX를 놓고, 그렇게 만든 위성 신도시는 인접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원도심을 위협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근현대사의 중심지 서울을 대표하던 서울역은 전시관을 면치 못하고 백화점의 부속시설로 몰락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조선 후기 내내 폐허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금도 복원 중이지만 온전한 복원 계획은 오리무중이다.
서울을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 평가하는 시각에 대해 건축학자인 저자는 매서운 회초리를 들이댄다.
'도시논객'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인 저자가 도시를 거닐며 건축물과 도시공간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사회 현상을 매섭게 바라본 책이다. 저자는 '지난 10년의 도시 목격담'으로 부르며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해부한다.
저자는 투전판으로 전락한 도시, 최악의 토건 공약 새만금 개발과 한반도 대운하, 페허된 경복궁, 최고의 흉물 국회의사당, 가부장 체계가 투영된 아파트, 무능하고 무책임한 건축가들이 만든 도시 경관, 민주주의 작동 원리에서 동떨어진 국방부 청사에 들어간 콘크리트 덩어리 용산 대통령실 등을 끄집어 올리며 우리 일상 풍경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와 불협화음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건축은 인문학으로 출발해서 공학으로 완성되며 예술작품으로 남기를 열망하는 작업"이라며 지자체장들이 개발하는 '관광도시'는 "세트장이나 도박장"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른바 '도시의 정치화'를 빼곡히 거론한다.
무거운 주제 너머에는 건축에 대한 해학이 뒤따른다.
잉여를 담기 위해 태어난 빗살무늬 토기에서 집과 도시의 기원을 유추하고 에어컨에 밀렸어도 관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풍기가 존재하는 현주소, 쇼파와 테이블이 차지한 아파트 생활에서 요지부동하는 온돌문화의 현실을 꼬집으며 현대 건축의 문제들을 흥미진진한 문장과 해학으로 비튼다. 쇼파를 두고 앉기보다 입적을 앞둔 부처님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며 열반을 꿈꾼다는 식이다.
제주도에서 탄 비행기가 수도권에 이르면 저 아래 말린 해삼 뭉치나 삼엽충 같은 것들이 잔뜩 보인다고 한다. 이를 '삼엽충의 도시 풍경'이라고 꼬집는 저자의 위트에는 수도권 곳곳에 난개발 수준으로 들어선 골프장과 골프 연습장의 무심한 경관이 담겨 있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3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