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은 탈락하는 순간에도 웃었다

클린스만 미소. 연합뉴스
이해할 수 없는 미소, 이에 대한 해명은 오히려 분노를 야기할 뿐이었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은 지난해 2월 한국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첫 시험대였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 최고 전력을 자랑하는 만큼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아시아의 강호'로 군림했으나, 아시안컵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1956년 제1회, 1960년 제2회 대회 연속 우승 이후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직전 2019년 아랍에미리트(UAE) 대회에서는 8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64년 만에 정상에 오를 적기라를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승 염원을 이뤄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결전지인 카타르로 향했다.

그런데 조별리그부터 클린스만호의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조별리그 E조에서 월등히 높은 23위인데 바레인(86위), 요르단(87위), 말레이시아(130위) 사이에서 조 2위에 그쳤다.

한국은 바레인을 3-1로 제압했으나 요르단과 2-2로 비겼다. 특히 '최약체' 말레이시아와는 졸전 끝 3-3 무승부를 거뒀다. 상대가 FIFA 랭킹에서 무려 107계단 아래인 약체임을 감안하면 패배나 다름 없는 결과였다.

여기서 클린스만 감독의 행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이 말레이시아를 꺾고 조 1위에 오르면 D조 2위인 일본과 16강에서 만나는 대진이었는데, 조 2위에 그치자 클린스만 감독은 마치 일본을 피해 안심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일본 역시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나였기 때문. 비록 8강에서 이란에 덜미를 잡혔지만, 엔트리 26명 중 무려 20명을 유럽파로 채울 만큼 탄탄한 전력을 자랑했다.

이에 해외 언론에서는 클린스만 감독에게 "말레이시아전에서 동점골을 허용한 뒤 미소를 짓던데, 일본을 피해서 웃음이 나왔는가"라는 조롱 섞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일본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피하고 싶은 팀은 없다"고 반박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도 문제가 됐다. 말레이시아전 뒤 기자회견에서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약체와의 졸전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해맑은 클린스만. 연합뉴스
클린스만호는 여러 부정적인 평가를 뒤로하고 토너먼트에 돌입했다.

토너먼트에서는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승리했고, 8강전에서는 호주와 연장 접전 끝 2-1 역전승을 거뒀다. 2경기에 걸쳐 무려 240분 혈투를 벌였다.

경기력은 아쉬웠지만 준결승에 오른 만큼 비난 여론은 잠시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끈질긴 모습을 보여 '좀비 축구', '극장 축구'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실제로 한국은 조별리그 2차전부터 4경기 연속으로 골을 터뜨려 패배를 면했다.

우승까지 2승만 남겨둔 한국은 준결승에서 요르단을 만났다. 조별리그 2차전 2-2 무승부를 포함해 역대 전적에서 3승3무로 우세한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 2차전 맞대결이 좋은 자료"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르단에 사상 첫 패배의 수모를 겪으며 우승이 좌절됐다.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울버햄프턴) 등 막강한 공격을 두고도 유효 슈팅을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채 0-2로 참패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탈락의 슬픔을 추스릴 새도 없이 곧바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경기 후 요르단 관계자들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 것.

클린스만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했을 때는 축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웃으면서 축하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생각하는 관점이 다른 것 같은데, 상대를 축하해주는 것도 지도자로서 패배자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말처럼 생각하는 관점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과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던 만큼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었다. '주장' 손흥민은 탈락 후 눈물을 흘렸고, 다른 선수들 역시 그라운드에 쓰러져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이에 글로벌 매체 ESPN은 "클린스만은 완패를 당한 뒤 요르단의 후세인 아모타 암무타 감독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미소를 지었다"면서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한국 선수들과 대조적인 장면으로 한국 팬들의 분노를 자아냈다"고 지적했다.

한국 축구 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아시안컵 우승을 결국 놓쳤다. 게다가 클린스만 감독은 탈락하는 순간까지 미소를 짓는 등 부적절한 행동으로 실망감을 안겼다.

결국 탈락 후 클린스만 감독의 퇴진 여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를 분석하며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2년 반 뒤 열릴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퇴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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