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복직을 사흘 앞둔 현직 영양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해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이 생전에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나타나 또다시 '교권 추락', '학부모 갑질'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달 29일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영양교사 A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20년 임용된 후 줄곧 해당 학교에서 근무했던 A씨는 지난해 들어 '건강상 이유'로 병가를 사용했고, 지난 1일 학교로 복직할 예정이었다.
고인의 장례식이 열린 다음 날인 지난 2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정문 앞. 고인을 추모하는 동료 교사들이 보낸 조화 6개가 학교 담벼락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다.
해당 조화에는 '영양 선생님 미안합니다. 편히 쉬어요', '선배교사, 영양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경기중등선배교사, 하늘에서 평안을 기원합니다' 등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추모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전국 일부 지역에 강풍·풍랑주의보가 내려졌던 이날, 한산한 학교 운동장에도 강한 바람이 불어 조화들이 땅바닥에 고꾸라졌지만, 쓰러진 조화를 일으켜 세워주는 이는 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재학생 정수연(15)양은 "널브러진 조화들을 잘 세워 놓으면 좋겠는데 저는 조화를 만지는 일조차 미안하다"며 슬퍼했다.
다른 재학생 천모(15)군은 "학생들도 추모하는 분위기다. 조화 앞에서 (선생님께) 절하고 간 친구들도 서너 명 봤다"며 "(고인의 부고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접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애도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B(15)군도 "친구들은 급식에 대해 불평하지도 않았다"며 "영양 선생님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고인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은 고인을 애도하면서, 교육 당국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고인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아직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역 맘카페 등을 중심으로 영양교사로 일했던 고인이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학부모들은 고인이 건강상 이유로 휴직했던 지난해에도 학교장 면담에서 '음식이 식어 맛이 없어진다. 교실 배식을 하는 타 학교를 대상으로 '급식 벤치마킹'을 시행해달라" 등 다수의 급식 관련 민원을 넣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학부모들에게 전해진 '학교장 면담'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급식 문제에 대해 학부모와 급식실이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학교 홈페이지에 '급식 건의 게시판'을 신설해달라"거나 "학교 외부 전문기관을 섭외해 급식 컨설팅을 시행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사항들이 있었다.
심지어 학부모 민원 중에는 영양교사 개인이 감당하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들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급식이 식지 않도록 모든 반마다 전기밥솥을 설치해달라"는 학부모 요구까지 나오자 학교 측이 나서서 "조리기구가 학급으로 이동하는 것은 급식실 규정 위반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시행할 수 없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에도 해당 학교는 A씨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서울 시내 학교를 총괄하는 서울시교육청도 현재로서는 해당 사건을 교권 침해 사안으로 판단하지 않아 조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교사의 죽음에 대해) 무척 놀랐고 당황스럽다. 슬퍼하고 있고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다 교사가 휴직을 신청했느냐는 질문에는 "건강상 질병 휴직이었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서울교육청으로 연락하는 것이 좋겠다. 교육지원청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책임을 돌렸다.
서울시교육청은 A씨 죽음에 대해 이미 학교 측이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며 "이미 조사는 종결됐고, 교권침해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추가 조사 여부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어 "저희가 알기로는 '밥이 맛이 없다'는 수준의 민원이었는데, 어느 학교에서나 나오는 민원으로 알고 있다. 학교 측도 이 정도까지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라면서 '학부모 갑질 의혹'에 대해서는 "(A씨) 유가족이 깊이 있는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며 답변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