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천'(私薦) 논란에도 불구하고 총선 수도권 전략의 일환으로 '86 운동권 청산'을 내걸고 특정 인물을 띄우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맞물려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당내 핵심 의원들이 물밑에서 후보 추천 및 교통정리에 나서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정에서 한 지역구를 놓고 추천 인사가 엇갈리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천 신청 단계에서부터 '과열' 경쟁 양상으로 전개되는 곳도 있다. 수도권이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인데 반해 자칫 전략적 혼동과 조직 분열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1일 한 위원장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반칙과 특권의 청산을 위한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 보낸 서면 축사를 통해 "이들(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운동권이었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정치 주류로 자리 잡았다"며 "국민과 민생은 도외시하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 막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며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퇴출되지 못한 채 22대 국회에서도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운동권 세력 청산이 이번 총선의 주요 전략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에 맞춰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정청래 최고위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의 맞춤형 후보로 내세우면서 '사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시스템 공천'을 천명했지만, 특정 인물 전략공천을 염두에 뒀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 또한 이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 문제가 크다고 보고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거론하기도 했다.
'사퇴' 사건 이후에도 한 위원장은 아랑곳 없이 이 같은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중이다. 민주당 '86 운동권'이 자리 잡은 지역에 여권 유력 인사의 '자객' 공천이 거론되며 전략 공천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출신 권오현 변호사가 서울 중·성동갑에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활동 중임에도, 윤희숙 전 의원을 86 운동권 상징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맞춤형 자객 후보로 추켜세웠다. 이에 권 예비후보가 "특정 후보를 거론하는 것은 공정성에 반할 수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윤석열 정부에서 승격된 국가보훈부의 초대 장관을 지낸 박민식 전 장관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민주당 김민석 의원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을에, 영입 인재인 호준석 전 YTN 앵커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지역인 서울 구로갑에 각각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한 위원장이 '86 운동권 청산' 전략에 집중하는 사이 수도권 내 다른 지역은 윤핵관 인사들이 물밑에서 후보 추천 및 이른바 교통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재영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물론 공관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는 이철규 의원이 키를 쥐고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 모습이 드러나는 등 한 위원장 측과 윤핵관 측이 서로 부딪치는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중·성동을 지역으로, 10년 동안 당협위원장을 맡으며 지역을 다져 온 지상욱 전 의원이 최근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곳이다. 지난 총선에서 지 전 의원은 민주당 박성준 의원(당시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가 4.7%p에 불과했다.
하태경 의원과 이혜훈 전 의원, 이영 전 의원 등이 동시에 해당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는데, 모두가 "당과 상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장동혁 사무총장, 이철규 의원과 각각 소통을 별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원 보이스'가 되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최근 서울 강서을 출마를 공식화 한 박대수 의원(비례)의 경우 윤 대통령 측근 중 한 명인 박성민 의원의 추천으로 해당 지역을 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서을은 김성태 전 의원이 오랫동안 지역 민심을 다져 온 곳이다.
이철규·박성민 의원 등 윤핵관 인사들은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 공천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인물들이다. 당시 김기현 대표는 당 귀책사유로 발생한 보궐이라는 이유로 '무공천'을 주장했지만 이들의 거센 요구에 못 이겨 공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군다나 이들의 출신 지역은 각각 강원도와 울산으로 수도권 민심에도 밝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도권 선거가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인데, 한 위원장과 윤핵관의 전략 분산 및 공천 불협화음으로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통화에서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는 수도권 선거 다 말아먹는다"며 "수도권 선거는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대표가 결심해서 키를 잡고 참신한 인물을 전략 지역에 내세워야 한다. '한동훈의 바람'으로 치러야 그나마 해볼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철규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누가 누구를 어디에 추천하고 그런 것 없다"며 "당의 혼선 같은 것도 없다"고 입장을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