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1일(한국 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8강에 진출했다.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앞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역대 아시안컵 조별리그 최다인 6실점으로 불안한 수비가 최대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에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를 마친 뒤 "전술적인 부분은 선수들과 신중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다"면서 "역습, 수비 과정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고, 모두 보완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토너먼트를 앞두고 변화를 예고한 것.
한국은 이날 사우디를 상대로 스리백 전술을 꺼내 들었다. 지난 조별리그 1~3차전은 물론 줄곧 포백 전술을 가동했던 만큼 이번 변화는 파격적이었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과 김영권, 정승현(이상 울산 HD)이 스리백 수비를 형성했다. 측면 풀백에는 설영우(울산 HD)와 김태환(전북 현대)이 배치돼 상황에 따라 5명이 수비를 맡기도 했다.
공격에도 변화가 있었다. 조별리그 1~3차전에 모두 선발 출전한 조규성(미트윌란)이 벤치에 앉고, 손흥민(토트넘)이 대신 최전방에 배치됐다.
수비적인 전술을 꺼내든 만큼 점유율을 포기해야 했다. 사우디는 전반 동안 55%로 한국보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은 손흥민을 활용한 역습을 통해 기회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전반 유효 슈팅은 2회로 사우디(0회)보다 많았다.
결국 클린스만호는 후반 20분 정승현이 빠지면서 스리백에서 다시 포백으로 변환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한 것.
전술을 바꾼 타이밍은 절묘했다. 교체 투입된 조규성이 후반 종료 직전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끊임없이 사우디 골문을 두드린 결과였다.
이후 연장전 뒤 승부차기로 향했고, 한국은 수문장 조현우(울산 HD)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조현우는 3, 4번째 키커의 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떠올랐다.
조규성 역시 이날 경기의 영웅이었다. 교체 투입 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별리그에서의 부진을 털고 부활을 알렸다.
비록 전술 변화 탓에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스리백으로 시작을 했는데, 훈련 때부터 너무 좋았다. 오히려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나는 벤치에서 잘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들어간다고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씩 대표팀 소집이 있을 때 경기 중 스리백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로 훈련을 해왔다"면서 "이번 경기를 앞두고서 스리백으로 준비했다. 실점 장면을 제외하면 연장전까지 상대의 위협적인 공격 패턴을 잘 막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희찬(울버햄프턴) 역시 스리백 전술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쉬는 시간에도 어떻게 할지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덕분에 잘 됐던 것 같다. 훈련 과정이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이는 클린스만 감독과 선수들의 긴 회의 끝 내려진 변화였다. 황인범은 "감독님은 우리를 믿었고, 우리와 많이 소통했다"면서 "스리백으로 나섰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수비할 때 어느 공간을 막아야 하는지 이런 부분을 잘 소통했다"고 떠올렸다.
클린스만 감독은 줄곧 연속성과 지속성을 강조했지만, 이번 만큼은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사우디를 꺾고 우승을 향한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한국은 다음달 3일 호주와 8강에서 격돌한다. 황인범은 "다음 경기에는 어떤 전술로 나갈지 모르지만, 이제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면서 "오늘 얻은 단단함을 잘 이어가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