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등판'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가 공화당의 2번째 대선 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하면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의 재대결이 확실시되는 모양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된 뒤 역대 최악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지난 정부에서 큰 파동을 낳았던 방위비 분담 협상과 주한미군 철수 거론, 이번 정부에서 출범한 핵협의그룹(NCG) 등 우리로서는 준비해야할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국 대선까지는 아직 9개월 남짓한 기간이 남아 그 동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5배 인상 요구했던 '방위비 분담금'…전략자산 전개 늘어났는데, 그 비용은?
2021년 초 타결된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은 2025년 말 만료된다. 다시 말해 2026년부터는 12차 SMA를 적용해 방위비 분담을 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11차 SMA 협상에서 "한국은 부자 나라"라는 논리로 기존 1조원 가량이었던 방위비 분담금을 5조원 정도로 인상하라고 요구했었다.
방위비 분담금의 사용처는 주한미군 노동자들의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의 3개 항목으로 제한돼 있다. 때문에 당시 미국이 인상을 위해 꺼내들었던 논리가 한국 방어에 필요한 전력을 포괄하는 새 항목, '준비태세(readiness)' 신설이다. 이는 주한미군의 순환배치와 역외훈련 비용,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의 한국 배치 비용을 포함한다.
실제로 2019년 말 11차 SMA 협상 당시 미 국무부 제임스 드하트 방위비 분담 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가 외교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현재 SMA의 틀은 한국 방어에 드는 실제 비용을 포괄하지 못한다"며 이같은 주장을 했었다.
그는 "미군은 한반도에 임시로 배치됨과 동시에, 적절하게 훈련하면서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이 곳으로 이동했다가 돌아가야 한다"며 "이는 모두 한국의 '고도의 준비태세(extremely high status of readiness)'를 위한 차원이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대북 억제를 위해서 주한미군의 훈련과 배치, 전략자산 전개가 필요하니 그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하라는 논리다. 실제로는 한국 방어뿐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에 의해 실행되는 면도 강하지만, 동맹의 가치 자체를 잘 신경쓰지 않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 성향상 이 주장이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작지 않다.
더욱이,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 시행하고 전략자산 전개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대북 억제를 위해 연합훈련의 규모와 전략자산 전개 빈도 모두 늘어났다. 우리 측 협상력 약화가 우려되는 이유다.
외교부는 이미 12차 SMA 협상을 올해 안에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수석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다음 협상을 준비하면서 한미 간 긴밀히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또 주이란대사로 자리를 옮긴 김준표 전 북미국장의 후임으로 홍지표 국가안보실 선임행정관(파견)이 29일 임명됐다. 그는 주미대사관 1등서기관, 북미1과장 등을 했던 전형적인 외교부 내 엘리트 라인으로 꼽히는데, 11차 SMA 당시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TF 팀장을 맡은 경력도 있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treaty)이 아니라 협정(agreement)으로 결정되는 만큼, 미국 대선 전에 타결된다고 해도 한 쪽이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강제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도 유효기간이 2014-18년이었던 9차 SMA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지는 않았고, 그 다음 10차 SMA를 2019년에만 적용되는 1년 기한으로 정한 뒤 11차 SMA에서 무리한 요구를 했던 전적이 있다. 아직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의 경우엔 매년 갱신되는 미 국방수권법(NDAA)에서 주한미군 규모를 2만 8500명 이하로 줄이지 못하게 하는 민주·공화당의 초당적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김성한 "미 대선 전까지 NCG 공고화해야"…북미대화 재개한다면 '군축 협상' 카드 가능성도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북 확장억제 강화책으로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이 꼽힌다. 미국 핵무기의 사용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있지만, 한미가 핵 작전계획 등의 민감한 사항을 사전에 협의하기 위한 제도적 틀이다.
지난해 7월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워싱턴선언과 한미동맹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는 흔히 거론되는 전술핵 재배치, 이른바 '핵공유' 등이 핵비확산조약(NPT) 위반이라는 의견이 많기에 나온 결과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 양국의 핵 운용체계를 긴밀하게 일체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에 NCG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자리에서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한미가 확장억제를 '작전계획'화해 우리가 핵운용 체계를 제대로 숙지할 수 있게끔 실무협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미국 대선 예비주자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지닌 인사들이 있기 때문에 신고립주의적 색채를 띠게 될 경우 외국과의 군사동맹을 경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당연히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그가 NCG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우려뿐 아니라,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있다. 치적을 남기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며 북미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예측을 기반으로 한 사항이다.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북한이 대화에 응할 수 있는데, 쉽게 핵을 포기할 리가 없으니 비핵화보다는 군축 쪽이 좀 더 가능할 수 있다"면서 "군축을 한다면 미국이 북한 때문에 핵탄두를 감축할 가능성은 없으니, 그 대신 NCG를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SMA는 '협정'인데, NCG는 이보다도 더 약한 정상 간의 '선언(declaration)'을 기반으로 한다. 당연히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원한다면, 대북 억제력 약화를 각오하고 이를 파기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우리 입장에서 NCG는 북핵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줄이는 기능도 하고 있으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이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도록 내실을 다져 둘 필요성이 있다. 김 전 실장의 발언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주도적 대처할 준비·역량 갖췄나?…"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들 논의해야"
일련의 우려들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미국이 강대국이고 우리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또한 주도적으로 대처할 준비와 역량이 갖춰져 있는지다.
예컨대 방위비 분담금은 협상 때에는 큰 이슈가 되곤 하지만, 막상 타결되고 국회의 비준을 받은 뒤 실제 쓰이는 과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시민단체 등이 미군이 쓰지 않은 분담금의 존재와 그 용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서정건 교수는 세종연구소의 '정세와 정책' 1월호에 실린 '2024년도 미국 대선 전망과 우리의 대응'에서 "트럼프의 선택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행정부는 북미관계 급변에 대비해 '담대한 구상'을 재정비해야 하고 입법부는 방위비 분담금 비준과 관련해 부대의견 이상의 감독 권한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 관련 현안은 바이든 재선 상황에서도 똑같이 숙고해야 할 사안들"이라며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방위비 분담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느냐에 대한 국회의 감시감독 기능 같은 것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될 때"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도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미 트럼프 캠프 쪽과도 교류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