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의 슬릭백, 외국인 감독 머리 쓰다듬은 배구 여제, 무너진 감독들, 새벽 3시까지 퍼포먼스를 준비한 '99즈'.
V-리그 올스타로 뽑힌 선수들은 모두 세리머니에 진심이었다. 그동안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27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올스타전'. 이날 올스타전을 관전하기 위해 인천을 찾은 팬들은 총 6120명. 역대 올스타전 관중 수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수많은 관중과 함께한 올스타전은 볼거리로 가득했다. 올스타전에 참여한 40명의 선수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제각각의 끼를 발산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팬들은 행사 내내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선 감독들부터 제대로 무너졌다.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한태준(우리카드)의 손에 이끌려 나와 K-POP 음악 '꽃'에 맞춰 함께 몸을 흔들었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직접 코트 위에서 경기를 뛰기도 했다. 강 감독이 득점 성공 후 쑥스러운 듯 세리머니를 거절하자, 주심은 강 감독에게 옐로 카드를 꺼내며 세리머니를 부추겼다.
그러자 강 감독은 현대건설 선수들 4명과 모여 'When We Disco'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이때 수많은 관중이 박장대소하며 화답했다.
남자부 세리머니 상은 올스타전 맏형 신영석(한국전력)의 몫이었다. 선보인 퍼포먼스는 '슬릭백'. 공중 부양을 하듯 이동하는 춤 동작으로, 최근 온라인상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신영석은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준비 과정을 털어놨다. "올스타전을 앞두고 팬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지 2주 정도 고민했다"는 것이다.
신영석이 보여준 슬릭백은 꽤나 퀄리티가 높았다. 초보들은 하기 힘든 동작임에도 거의 완벽한 동작을 보여줬다.
이에 신영석은 "많은 분들께서 다양한 제안을 해주셨는데, 슬릭백 요청도 받았다. 그 부탁을 듣고 1시간 정도 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한테 이런 재능이 있을지 몰랐다"며 "앞으로도 팬 분들과 좋은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세리머니 상을 받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신영석은 "임성진(한국전력), 임동혁(대한항공), 김지한(우리카드)이 숙소 앞 방을 썼는데, 전날 새벽 2~3시까지 세리머니 준비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그 선수들 준비 소리에 잠을 못 잤다"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 선수들이 팬들을 위해서 준비를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기특했다"고도 덧붙였다.
신영석은 세머니 상에 이어 남자부 MVP도 거머쥐었다. 이에 대해선 "당연히 레오(OK금융그룹)가 받을 줄 알았다.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저도 많은 상 받았지만 올스타 MVP는 처음이다. 팬 분들께 감사하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여자부 세리머니 상을 받은 김연경(흥국생명)도 엄청난 준비 과정을 거쳤다. 경기 전부터 김연경은 "작년에 받지 못한 세리머니 상을 올해는 받고 싶다"고 각오를 드러낸 바 있다.
김연경이 준비한 퍼포먼스는 2세트 여자부 경기에서 가동됐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한 댄스였다. 김연경은 아본단자 감독의 머리와 볼을 터치하며 노래에 맞춰 춤을 췄고, 관중의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연경은 원했던 상을 받고는 "이 상을 받고 싶었는데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춤을 잘 못 추는데 감독님과 췄던 게 격렬했다.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공을 돌렸다. 세리머니 준비를 새벽까지 했다고도 덧붙였다.
처음엔 아본단자 감독이 함께하는 세리머니를 거절했다고 한다. 김연경은 "감독님께 노래를 설명하며 제안했을 땐 거절을 당했다. 그런데 막상 세리머니를 시작하니 리듬을 타시면서 맞이해주셨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도 자신있게 춤을 추면서 감독님의 머리와 볼을 만졌다"고도 회상했다.
올스타전에 임하는 후배들의 자세를 칭찬하기도 했다. 김연경은 "요즘 워낙 어린 선수들이 준비를 잘하고 거절도 하지 않는 편"이라며 "이벤트를 잘 즐긴다. 이제 그런 문화가 된 것 같다. 그냥 모두가 잘 즐겼다"고 만족해 했다.
여자부 MVP에 오른 표승주(IBK기업은행)는 생애 첫 올스타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바로 태국 출신 아시아 쿼터 팀 동료 폰푼(IBK기업은행)의 헤어 스타일을 따라한 것.
표승주는 "폰푼의 헤어 스타일은 트레이드 마크다. 제가 봤을 때도 특이하고 귀엽다"며 헤어 스타일을 바꾼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제가 선수들에게 폰푼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자고 제안해서 같이 하게 됐다"고 했다. 단 "리그 경기에선 할 의향은 전혀 없다. 그건 어렵다"고 단언했다.
첫 올스타전에서 MVP가 된 표승주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만큼 재밌었다. 저희 모든 선수들이 즐긴 것 같아서 기쁘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첫 올스타전에서 MVP 받게 돼 기쁘다"며 "올스타전에 올 수 있던 건 팬 분들의 투표 덕분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