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당내에서는 '디커플링'이 심화될수록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사이 금이 간 신뢰 관계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도 조심스레 나온다.
꼬리 내린 듯 보이지만…尹·韓 지지율 격차 더 벌어져
당정 갈등 이후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의 지지율은 계속 엇갈리는 상태다.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1월 4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 비대위원장에 대해 전체 유권자 기준으로는 52%가 긍정평가했다. 국민의힘 지지자로 좁히면 긍정평가율은 89%로 치솟았다.
한국갤럽은 "김기현, 이준석 등 전임 당 대표들보다 좋게 평가됐고, 긍정률 기준으로만 보면 2012년 3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평가와 흡사하다"며 "중도층과 무당층은 약 70%가 윤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한 위원장에 대해서는 긍·부정이 각각 40% 내외로 엇비슷하게 갈렸다"고 분석했다.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 한 비대위원장에게 쏠려있는 것. 그런 데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라는 불씨는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어 윤 대통령이 더욱 수세에 몰렸다는 평가다.
수도권 초선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여사가 왜 사과해야 하느냐'는 분들조차 '한동훈을 저렇게 내치면 우리가 다음에 뭘 할 수 있겠느냐'며 감싸는 정서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지난 25일 김 여사가 관여됐다고 의심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더 이상 밝혀질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을 놓고 '꼬리 내렸다'고 평가하지만, '일견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김 비대위원이 사퇴 요구를 계속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역시 '한동훈이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총선 국면에서는 부정평가가 압도적으로 높은 대통령에 대해 여당으로서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차츰 힘을 얻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년' 신뢰관계 이미 균열…'3차장' 때와는 다르다?
공천 시즌의 막이 오른 만큼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사이 생긴 상처가 아물 시간이 없다는 것도 '완전한 화해'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사천(私薦)은 없을 것', '이기는 공천을 할 것'이라고 양측 모두 말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모두 '자기 사람'으로 여기는 후보가 공천을 받도록 물밑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있지만, 대권 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이번 총선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의견에 점점 설득력이 더해지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한 비대위원장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이끌었던 '사법농단 수사'를 공통적으로 언급한다.
"한 비대위원장은 처음에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윤 대통령(당시 중앙지검장)의 의견에 따라 수사를 시작했다"며 윤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한 비대위원장은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따내면서 돋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갈등이 또 표출되더라도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 비대위원장이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무리한 수사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헌정사상 첫 사법부 수장(양승태 전 대법원장) 기소'라는 타이틀에 욕심을 냈기 때문에 일단 수사가 시작되자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것이다.
당 고위관계자는 "앞으로 두 사람이 공천을 놓고 기싸움을 더 할 것"이라며 "1차전에서는 표면적으로 한 비대위원장이 이겼지만, 대통령실에서 먼저 비공개 회동을 언론에 공개했는데 앞으로 서로 믿고 일할 수 있겠느냐"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