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전면시행…'유예 압박' 빼곤 대책없던 노동부의 지난 한달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긴급 전국 기관장 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제정 3년만인 27일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사업장까지 전면 시행된다. 엄정 법 시행 의지를 밝히면서도 유예 입법 무산에 유감을 표하는 정부가, 법 전면 시행에 지금까지 충실히 대비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이정식 장관 주재로 전국 주요 노동청장이 참여하는 긴급 회의를 열어 중처법 확대 적용에 따른 대응계획을 논의했다. 이 장관은 중소사업장 안전체계 구축 지원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중대재해 사건 발생시 엄정 수사를 당부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중소사업장 법 적용 유예' 입법은 국회에서 무산됐다. 중처법은 이날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사업장에서 △사망자 1명 이상 △같은 사고로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가 2명 이상 등 발생한 산업재해시 사업주를 처벌한다.
 
정부는 바로 다음주부터 3개월간 대상 중소사업장 83만7천곳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전수 조사하고, 이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기술지도와 시설 개선 등 재정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긴급 회의에서 이 장관은 국회에 거듭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그간 국회에서 중처법 추가 적용 유예를 논의해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어제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의결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국회를 상대로 수차례 유예 입법을 촉구한 그는 25일 본회의 처리 무산 뒤에도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고 했다.
 

2년전 정부는 적극 대비…이번엔 국회만 압박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중소사업장의 법 적용을 2년 추가하는 내용으로 '부칙'만 한줄 바꾸는 내용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중소사업장 법 적용은 2021년 1월26일 중처법 제정으로부터 3년이 유예된 상태였다. 따라서 정책지원 기간도 3년 부여돼 있던 상황이다. 노동계가 "정부가 그동안 대책 마련을 뒷전에 둔 채 시행 임박 시점에 추가유예 압박만 일삼았다"고 비난하는 이유다.
 
실제로 2년 먼저 적용된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가 취한 행보와 이번은 차이가 있다. 정부는 두달 전부터 '중처법의 중대산업재해 관련 해설서'를 배포하고, 시행 한달 전에는 법무부와 공동 학술대회 개최나 중처법 전용 홈페이지 개설 등 활발히 대비했다. 법 시행에 맞춰 '2022년 산재 사망사고 감축 추진 방향' 정책 자료도 냈다.
 
정작 이 장관도 2022년 5월 취임 직후 산재희생자 위령탑을 참배하면서 "중처법이 시행된 올해는 실질적인 중대재해를 감축할 골든타임이다. 고용노동 행정 책임자로서 일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소임으로 삼고, 임기 중 중대재해를 감축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강조했었다.
 
반면 이번 전면 시행을 앞두고는, 노동부가 반년 전인 지난해 6월부터 '중처법 개선 TF'를 가동해 추가유예를 검토한 것으로 보도됐다. 뒤이어 여당 발의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됐고, 노동부 장·차관은 수시로 현장 간담회를 갖고 법 적용 추가유예를 거론했다.
 
이 과정에서 '공포 마케팅'으로 비난받는 주장까지 내놨다. 이 장관은 지난 24일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확대 시행된다면,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사장님도 중처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고 언급했다.
 
여기서는 음식점이나 제과점에서 사망자 발생과 같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확률이 크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다. 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에 따르면 중소사업장의 업무상 사고사망자 365명 중 도소매·음식·숙박업 종사자는 15명으로 4.1%에 그친다.
 

중소사업장 현장 혼란 누가 불렀을까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에 적용되는 한 중소 철강업체. 나채영 수습기자

정부·여당은 지난해 말 중소사업장에 1조5천억원을 투입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한다는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지원대책'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유예 입법을 촉구해왔다. 영세한 중소사업장 경영자가 수사·재판·처벌을 받는 동안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근로자들의 고용도 위태로워진다는 논리가 뒷받침됐다.
 
중소사업장 '40.8%가 준비되지 않았다'(지난해 4월)거나 '80%가 준비를 못했다'(지난해 8월)는 등의 재계 설문조사도 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정작 노동부가 지난해 3월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81%가 준비를 마쳤거나 준비 중'이라고 결과를 받아낸 설문은 묵살됐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시험 공부할 때도 호기롭게 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이게 갈수록 어렵네' 하듯이, 중소사업장들이 실상을 알아가면서 답변이 달라진 것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이라는 변수는 정부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과반이 '적극적'이던 지난해 3월·4월 설문과 다수가 '소극적'이 된 8월 설문의 사이, 지난해 6월에 중처법 개선 TF가 가동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추가유예 추진 기류가 중소사업장의 태도에 변화를 줬을 수 있고, 결국 업계 혼란으로 이어졌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와중에 여당은 전면 시행 이후인 다음달 초까지 유예입법 협상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어서, 혼란이 지속될 여지가 있다. 만일 뒤늦게 법이 개정되면, 그 사이 단속된 사업장을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사법절차상의 논란이 불가피해서다.

생명안전 문제에 노동자 차별 없어야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중단 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 가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

중처법은 수단이 '책임자 처벌'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사지만,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사용자가 '안전 환경'을 갖추고, 정부가 이를 충실히 지원하면 처벌까지는 불필요하다. 노동계는 특히 중소사업장이라는 이유로 근로자 안전이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중처법 전면 시행과 관련해 "정부와 여당, 사용자 단체는 이번 중처법 시행을 계기로 더 이상 사업장 규모로 생명을 차별해서는 안된다. 법 시행이 모든 노동자가 자본의 이윤추구에 내몰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는 노동존중 사회로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29년 전 정부의 파견법 제정 등을 비판했던 이 장관의 입장과 비슷하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 조사부장이던 1995년 9월 한겨레신문에 낸 '노동자 안중에도 없는 보수적 노동정책'이라는 기고를 통해 "중소기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적으로 열악한 임금, 노동조건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차별대우를 법제화하겠다니 이것은 헌법상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질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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