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곡이나 실린 정규앨범 '아카이브 오브 이모션스'(Archive of Emotions)를 낸 게 지난해 4월. 새로운 곡을 발표하기까지 약 9개월이 걸렸다. 이번엔 혼자만의 앨범이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출신으로 '다크 팝'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미국 여성 아티스트 자일로(XYLØ)와 함께 듀오를 결성했다. 밴드명은 '투록스'(2ROX)고, 이는 두 번째 미니앨범 제목이기도 하다. 음원 사이트에는 류수정의 앨범으로 나타나 있지만, '두 사람이 앞으로도 함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밴드명을 정했다.
자일로와 같이 만든 두 번째 미니앨범 '투록스'로 돌아온 류수정이 앨범 발매 당일인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열었다. '배드 걸스'(BAD GRLS) '쉿'(SHXT) '폴른 엔젤'(Fallen Angel)까지 3곡에 '쉿'과 '폴른 엔젤' 반주(인스트루멘털) 버전까지 총 5곡이 실린 이번 앨범에서 류수정은 4곡 작곡과 3곡 작사에 참여했다.
평소 다크 팝이라는 장르를 즐겨들었던 류수정은 먼저 자일로에게 연락해 작업하자고 제안했다고. 류수정은 "자일로랑 제 공통 관심사가 힙한 무드에 러블리한 포인트가 있는 거다. 이미지적으로도 잘 맞고, 제(음색)가 허스키한 편인데 자일로는 쨍한 느낌의 보컬이라 반대되는 매력도 있다"라고 말했다.
'좋은 음악과 멋진 나, 즐거움을 위해 더 필요한 게 있을까?' 두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쉿'에 달린 설명이다. 베이스가 곡 전반을 이끌어 묵직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인상적인 '쉿'은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미드템포의 하우스 장르 곡이다. 타이틀곡에 넣은 야심 찬 가사를 골라달라는 요청에 류수정은 "투록스 킬링 잇"(2ROX killin' it)을 꼽았다. 그는 "한국어로 치면 '아, 죽인다!' 이런 속어다. 가사가 반복돼 기억에 남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지난 10일 선공개한 음원 '폴른 엔젤'은 서로를 망가뜨리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이지만 '사랑'을 핑계 삼아 서로를 놓지 못한 채 파멸로 빠져드는 내용이다. '배드 걸스'는 때로는 반항적이고 때로는 고집스러운 모습이 닮은 류수정과 자일로의 '즐거운 우정'을 그린다.
자일로와 그의 노래를 이미 알고 있었고, 먼저 작업 제안을 했다고 해도 장차 같이 밴드를 꾸려서 활동하는 것은 훨씬 '본격적인' 이야기다. "자일로와 저의 노래를 많이 좋아해 주신다면 투록스라는 이름을 걸고 아예 음악을 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라고 한 류수정에게 자일로와의 협업에서 무엇이 얼마나 좋았는지 물었다.
타이틀곡 '쉿'을 쓸 때의 일화도 들려줬다. 류수정은 "제가 '쉿'에서 자일로 파트를 썼는데 자일로가 자기 스타일로 바꾸니까 매력이 더 살더라. 같은 곡 안에서 뭔가 자기만의 매력을 뽐낸다는 게 (둘이라서 가능한) 되게 좋은 시너지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에 아쉽게 빠진 곡도 있다. 류수정은 "이 프로젝트 준비할 때 여름이었는데 (빠진 곡은) 여름 향의 곡이었다. 준비하다 보니 겨울이 되어서 다음에 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머물다 보니 평소엔 시차 문제가 있었고, 서로 왔다 갔다 하는 데도 시간이 들어 제작 기간은 반년 정도 걸렸다.
본인의 강점을 물었을 때 류수정은 "지문 같은 음색"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목소리 자체가 특징이 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장르에 녹아도 제 색깔이 깎이지 않는 그런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 놓고 여러 장르에 도전하는 것도 있다"라고 부연했다.
류수정은 "결과물을 보면서 '시도하는 거 되게 재밌는데?' '괜찮은데?' 한 거 같다. 러블리즈라는 그룹으로 7년 동안 활동하면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굉장히 확실하고 길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거에 도전하는 게 되게 재밌게 느껴졌다"라고 돌아봤다.
2014년 데뷔해 8년 만에 '혼자' 공연한 류수정은 단독 공연을 통해 '충분히 무대를 꾸밀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멤버들이랑 같이하는 공연도 떨리긴 했지만 (혼자는) 더 떨리더라.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걸 못 한 것도 있어서, 앞으로는 좀 더 떨지 않고 하고 싶다. 혼자 계속 말을 해야 해서 멘트가 늘더라. 그걸 칭찬받을 때 기분이 좋았다"라고 털어놨다.
떨려서 제대로 못 한 것은 무엇일까. 류수정은 "생각보다 공연장 거리가 (저와) 가까웠다. 아이컨택(눈 맞춤)은 항상 잘했지만 저 스스로 표정을 더 편하게 하고 싶었다. 이번 공연에 기타를 처음 치면서 하다 보니, 손가락이 굳더라. 기타 퍼포먼스를 좀 더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라고 바랐다.
욕심을 더 내자면, 기타 연주도 녹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류수정은 "커버곡을 할 때 기타 연주는 꽤나 녹음했는데, 앨범에도 기타는 제가 녹음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라며 "머지않은 날 악기 녹음도 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또, "밴드 분들과 콘서트 연습할 때 베이스 소리가 너무 좋더라"며 "언젠가 베이스도 배워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투록스'처럼 협업 앨범이 아니라 단독 앨범을 낼 계획이 있는지 묻자, 류수정은 "작년에는 정규를 냈었는데 올해는 디싱(디지털 싱글)이라든가 미니라든가 이런 걸 자주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라고 답했다. 빠르게 바쁘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에 관해, 류수정은 "음악을 순수하게 좋아하고 음악에 일 욕심이 많아서 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항상 있었다. 조금이라도 쉬면 불안해지는 저 스스로의 인생에는 좋지 않은 거여도, 앨범은 쉬지 않고 빨리빨리 낼 수 있어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꾸준히 자작곡을 발표해 온 류수정. 저작권료 수입이 기특한, 이른바 '효도하는 곡'이 무엇인지 질문이 나왔다. 류수정은 "아무래도 러블리즈 '오블리비아떼'(Obliviate) 가사에 참여했는데 꽤나 효자고, (제) 정규앨범도 곡 수가 많아서 좋았다. 아직 용돈 정도 나온다"라고 답했다.
어느새 데뷔 10주년. "한 4년차 정도 된 것 같은데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라고 운을 뗀 류수정은 "되돌아보면 항상 그때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항상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돌이켜봤을 때 후회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앨범마다 진심으로 대했던 것"이고, 아쉬운 건 "매 앨범 제가 생각한 것만큼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부족함은 오히려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원동력"이 되어 좋은 작용을 이뤄냈다.
류수정의 데뷔 10주년은 곧 러블리즈의 데뷔 10주년을 뜻한다. '완전체'로 의 계획은 없을까. 그는 "작년부터 내년에 10주년이니까 '공연을 하자' '앨범을 내자' 이런 말은 (멤버들끼리) 항상 하고 있었다"라면서도 "멤버가 8명이다 보니까… 예능과 드라마 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일정을 맞출 수 있을까 싶지만 10주년을 하면 뭔가 하고 싶다는 얘기는 했다"라고 말했다.
"제가 앨범 혼자 내가면서 걱정 많이 하고 고민 많이 했을 때 멤버들, 그중 지수 언니는 공연도 보러와 주고 피드백도 해 줬어요. '러블리즈 때 본 팬들일 줄 알았는데 새로 보이는 팬도 많아서 네가 너무 대견하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너만의 것을 꾸려나간다는 거 같아서 너무 보기 좋다'고 해서 힘이 됐죠. 언니가 해줬던 것처럼 (대중도) '저만의 음악을 잘 꾸려나가고 있구나' 하면서 진심으로 즐기고 응원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