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증시가 두드러지는 강세를 보이면서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는 한국 증시 흐름과 대비되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과 맞물린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 해소를 올해도 주요 정책 과제로 꼽으며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약하는 美·日 증시
미국 뉴욕증시 주요 지수들은 새해 들어서도 작년 말 '강세'를 이어가며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3.95포인트(0.08%) 오른 4868.55로 마감하며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또 경신했다. 지난 19일부터 매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나스닥지수도 55.98포인트(0.36%) 상승한 1만 5481.92에 장을 마치며 2021년 11월에 기록한 사상 최고 종가(1만 6057)에 연일 다가가고 있다. 앞으로 약 575포인트(3.7%)만 더 오르면 해당 기록에 도달하게 된다. 지난 22일 사상 처음으로 3만 8천선을 돌파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최근 이틀 연속 소폭 하락해 다시 3만 7806.39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미 증시는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3월부터 낮추기 시작할 것이라는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다소 위축되면서 지난주 잠깐 주춤했다가 다시 상승세를 타는 흐름이다. 미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과 AI(인공지능) 열풍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다수의 시장 분석이다.
AI 최대 수혜사로 꼽혀온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해 16거래일 동안 4거래일 빼고 계속 상승해 이날 주당 600달러 벽까지 처음 넘어섰다. AI 시장 선점에 집중한 마이크로소프트 시가총액도 같은날 장중 3조 달러를 돌파했다. 애플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일본 증시도 크게 뛰었다.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새해 들어 상승폭을 넓히면서 지난 22일(한국시간) 종가가 3만 6546.95까지 올랐다. 이후 하락 중이지만 여전히 '거품경제기'로 불리는 1990년 초 이후 3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과 맞물려 엔화 가치가 역대급 약세(엔저)를 보이는 상황이 일본 증시엔 득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수출 기업들엔 '슈퍼 엔저'가 경쟁력으로 작용해 실적에 반영되고,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긴 어렵다'고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향후 환차익까지 기대하며 일본 증시에 '베팅'했다는 시각이다.
일본은행은 23일 올해 첫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도 마이너스 금리로 상징되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시장에선 4월쯤엔 마이너스 금리 해제 등 일본은행의 정책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힘 잃은 韓 증시…"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당국 안간힘
이처럼 훈풍에 올라탄 주요국 증시와 달리 한국 증시는 새해 들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1월 들어 25일까지 종가 기준 6.96% 하락했다. 국내 주요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22일까지 한국 증시 수익률은 25개 글로벌 주요 증시 수익률 가운데 밑에서 다섯 번째로 저조했다. 중국 증시 수익률이 그보다 낮았고, 최하위는 홍콩 증시였다. 수익률 상위권인 일본과 미국 증시는 각각 1위, 6위에 자리했다.
한국 증시의 신년 약세 원인으로는 중국 경제를 둘러싼 불안 심리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통화에서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경제는 부동산 시장 냉각, 소비 부진과 물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중화권 증시의 추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24일 중국 인민은행이 다음달 5일부터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려 시중에 180조 원 넘는 자금을 풀겠다고 경기 부양 의지를 드러냈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를 두고 시장의 물음표가 여전한 기류다.
한국 경제는 미국 의존도도 높은 만큼, 연준을 향한 시장의 조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위축된 점 역시 연초 국내 증시에 악재로 반영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한국 증시가 대외 변수에 유독 민감하다는 점이 부각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인접국임에도 한·일 증시가 온도차를 보이는 이유로는 양국 통화정책 방향 자체가 다르고,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일본은 선진국으로, 한국은 신흥국으로 분류된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정부가 작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내놓은 공매도 금지,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정책은 일종의 '증시 부양책'으로도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효과가 즉각 증시 훈풍으로 이어지진 않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올해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꼽으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도입해 운용하겠다고 예고했다. 구체 실행 계획은 다음 달 쯤 발표될 예정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일본의 주가 부양 정책을 참고한 것으로, 국내 상장사의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PBR은 기업 보유 자본 대비 시가총액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지표로, 1보다 작으면 주가가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 돼 있음을 의미한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증시 평균 PBR은 1.1로, 이를 일본 수준인 1.4, 장기적으론 미국 수준인 4.6까지 높이겠다는 게 당국의 목표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PBR을 포함한 기업의 주요 투자지표를 비교 공시하고, 가치 개선을 위한 자체 계획을 공표하도록 기업에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 학계 전문가는 "주가에 초점을 맞춘 단기 대응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론 기업 체질 개선을 도와주는 방향의 장기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