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의 상시근로자 50인(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 2년 추가 연장 여부가 25일 결정된다.
중소기업계가 확대시행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전체 중대재해 중 절반 가까이가 발생하고 있는 건설업계에서는 노심초사하며 사태의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여야, 국회 본회의 앞두고 중대재해법 확대시행 유예 논의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은 25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 연장 관련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앞서 국민의힘 윤재옥·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전날 오후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국회에서 만나 약 50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처리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윤 원내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 여야의 입장 차이가 있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내일(25일) 오전까지라도 계속 협의를 이어가도록 논의했다"고 밝혔고, 홍 원내대표도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논의를 해보겠다"고 전했다.
근로자 사망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등을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법은 지난 2022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됐지만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중소기업계는 준비 부족을 이유로 확대시행 2년 추가 연장을 요구해왔고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이런 내용을 담은 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노동계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보이며 관련 논의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왔다.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확대 시행 연장 목소리가 커지자 민주당은 확대 시행 유예의 전제 조건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등을 내걸었는데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정부와 의견조율을 거친 후 민주당과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여야가 국회 본회의 일정을 다시 잡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중대재해법 시행유예 법 개정 처리만을 위한 '원 포인트 본회의'가 잡힐 가능성은 제한적인만큼, 여야가 이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게될 전망이다.
"확대시행되면 건설기업 중 99% 형사처벌"
영세 건설업계인 전문건설업계는 중대처벌법이 이대로 시행되면 큰 혼란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계가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지만 다른 업종과 비교하면 건설업이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644명(611건) 중 절반 이상인 341명(328건)이 건설업계에서 발생했고, 이 중 66.3%(226명)은 50억원 미만 공사현장에서 발생했다. 전날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가 중대재해법 확대시행 추가 연장을 호소하며 ""50억원 미만 건설현장까지 법이 확대 적용되게 되면 건설기업 중 99%가 넘는 중소건설기업은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이유다.
실제로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대한전문건설협회와 함께 전문건설사 78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응답 기업의 96.8%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종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준비가 미흡한 이유에 대해 전문건설사들은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그 내용의 모호함(67.2%) △비용부담(24.4%) △전문인력 부족(8.4%) 등이 꼽혔다.
"확대시행 유예되더라도 보완조치 필요"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이 2년 유예되더라도 법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조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건정연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세 건설업체들은 △안전보건 전담조직 구성 및 운영 △재해재발방지대책 수립 및 이행조치 △안전보건 예산편성 및 집행 등 중대처벌법 상 사업주 안전보건조치 의무 등을 영세 기업에 맞게 보완해야 할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 내용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 건정연 관계자는 "영세 건설업체의 인력 수준을 감안하면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구성할 여력이 현실적으로 없는데 이를 강제하다보면 조직이 실제가 아니라 문서상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법의 취지가 처벌이 아닌 예방이라면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운용의 묘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종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업종별, 규모별 개선이 필요한 또 다른 부분으로 지목된다. 상시근로자보다 일용근로자가 많은 건설업에 다른 업종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의도치 않게 관련 규정을 어기게 된다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현장에 나와서 일하고, 일주일 쉬었다가 다시 일하러 나오는 근로자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 올때마다 종사자 의견을 들어야하고, 이걸 반영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법과 규정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면 안전보건 담당자도 현장에서 점검과 관리를 통한 재해 방지 활동이 아니라 사무실에 앉아서 문서 작업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관리인력 구인난도 현실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중대재해법 시행이후 안전관리자 구인난 역시 가중되고 있는데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중소, 영세 건설업체들은 인력난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2022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사업이 공사금액 120억원(토목공사 150억원) 이상 사업에서 2023년 7월 50억원 이상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건설사업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안전관리자는 약 3914명에 이를 것으로 계산됐다. 하지만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안전관리 분야 건설기술인은 6702명(2만 4196명→3만 898명), 연평균 1300여명 증가하는데 그치며 수요 증가치를 밑돈다.
어렵게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더라도 더 좋은 처우를 해주는 회사로 이직이 잦다는 점도 영세 건설업체들의 부담을 키우는 또 다른 이유다. 건산연이 건설업계 중소(213개사).중견기업(21개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의 38.5%, 중견기업의 52.4%가 최근 1년간 안전관리자가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직 또는 퇴직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모호한 법 규정에 따른 혼란으로 수십억원의 컨설팅을 받은 대형 건설사들도 아직까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한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영세 건설업체들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규제 개선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