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리스너)의 눈에 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인기곡은 더 널리 오래 유지되는 편이라, '음원 성적'은 당사자인 가수조차도 '하늘의 뜻'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말 발매된 곡이 음악방송을 중심으로 한 '활동 기간'이 끝난 뒤에 오히려 반응이 왔다. 발매 한 달여 만에 주요 음원 실시간 차트에 재등장했고 꾸준히 순위가 올라 일간 20위권 내에 들었다.
3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비비지(VIVIZ)의 미니 4집 '벌서스'(VERSUS) 타이틀곡 '매니악'은 24일 밤 11시 기준 국내 음원 사이트 멜론 '톱100' 33위, '핫100' 11위다. 23일 일간 차트에서는 27위였다. 지난해 12월 25~31일 주간 차트 82위로 처음 진입한 후 59위, 44위로 주간 순위도 상승세다.
CBS노컷뉴스는 비비지 멤버들과 소속사 빅플래닛메이드(BPM)에 '매니악' 역주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서면으로 이루어진 인터뷰에는 은하, 신비, 엄지 세 멤버는 물론 제작·마케팅·퍼포먼스 디렉팅 등 담당 부서와 곡의 인기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을 듣는 '팝 유어 옹동' 안무를 만든 안무가 카니(Kany)가 참여했다.
회사도 '매니악'의 역주행을 예상했다고. 마케팅팀은 "사실 '매니악'을 준비하면서부터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곡·안무 등 모두 저희가 그린 콘셉트대로 잘 나와 반응이 기대가 되는 곡이었다. 앨범이 나온 직후, 곡에 대한 팬분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며 언제라도 대중에게 사랑받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노래에 관한 확신이 있었기에, '매니악'이 역주행에 시동을 걸 때쯤부터 멤버들도 조짐을 읽었다. "역주행의 조짐이 보이자마자 알았다"라고 운을 뗀 은하는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곡이라 빛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너무 반가웠고 기뻤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알아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신비는 "활동이 끝나고 친구가 요즘 '매니악' 순위가 올라가고 있다며 '너희 역주행 할 것 같아!'라고 말해줘서 순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라며 "사실 활동이 끝나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매니악 더 큰 사랑을 받아야 하는 노래라고 말했었는데 이제 많은 분들이 매니악을 사랑해 주셔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라고 답했다.
'현재 진행형'인 '매니악'의 역주행 흐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 은하는 "매일매일 차트에 있는 '매니악'을 보면 신기하고 기분이 좋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일 것 같다"라며 웃었다(웃음 표시 'ㅎㅎ'를 전해 왔다). 그러면서 "아직도 한 칸씩 올라가는 게 귀엽다"라고 덧붙였다.
엄지는 "사실 정말 차근차근 올라간 거라 매일 설레는 마음이었기에 '이거다!' 하고 딱 기억에 남는 순간이 강렬하게는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대폭 상승하던 차트에 멤버들과 팬분들, 회사 분들까지 새삼 들떴던 기억이 난다"라고 돌아봤다.
앨범 발매 당시 소속사가 공개한 일문일답에서 멤버들은 '매니악'을 "상대를 미워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가사가 인상적인 곡"(신비)이자, "약간의 마이너한 멜로디와 가사에 강렬한 베이스가 참 멋지게 어우러지는 곡"(엄지)이라고 소개했다.
어떤 점에서 '매니악'이 다시 '선택'받아 역주행할 수 있었을까. 마케팅팀은 "'매니악'은 중독성 강한 댄스 챌린지로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완성도가 높은 곡 자체로 대중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다. 챌린지 구간만이 아닌 곡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대중에게 '선택' 받아 감사하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은하는 "아마 중독성 있는 훅 부분의 멜로디와 '팝 유어 옹동' 댄스 챌린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라는 의견을 냈다.
회사와 멤버 모두 언급한 '중독성 강한 챌린지'는 팝 스타 비욘세(Beyonce)의 안무가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안무가 '카니'가 짠 안무를 활용해 만든 챌린지다. '매니악' 안무 연습을 하면서 카니가 동작을 설명할 때 엉덩이에 '팝'(pop)을 주라는 의미로 "팝 유어 옹동!"이라고 한 장면이 온라인상에서 회자했다. 엉덩이와 골반을 쓰는 댄스 챌린지는 숏폼(짧은 길이) 영상으로 널리 전파돼 주목받았다.
이른바 '팝 유어 옹동' 챌린지가 역주행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멤버들은 입을 모아 "그렇다"라고 인정했다. 신비는 "사실 안무 시안을 보고 '노래의 무드에 잘 스며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임팩트가 있고 많은 분들께 가장 사랑받는 파트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안무가 카니는 "저의 안무가 '매니악'의 인기에 도움이 됐다는 건 제게 너무나 놀랍다"라며 "저는 이 안무가 너무나 좋은 곡인 '매니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매니악'의 인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바라봤다.
카니는 "요즘 틱톡과 댄스 챌린지 덕분에 댄서와 안무가들이 더 많이 눈에 띌 수 있게 되었고, 비비지와 빅플래닛메이드가 기회가 될 때마다 저의 안무를 칭찬해 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느낀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퍼포먼스 디렉팅팀 역시 "안무 시안 작업을 카니와 함께하면서 '팝 유어 옹동' 부분은 유행이 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 부분만큼은 수정 없이 무조건 밀고 나가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다. 퍼포먼스 디렉팅팀은 "수많은 안무 작업 속에 이렇게 한 번씩 '이건 될 것 같다!'라는 느낌이 올 때가 있는데, 그런 느낌이 확 오는 안무였다"라고 짚었다.
신비는 "사실 챌린지를 해 주신 모든 분들이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다. '팝 유어 옹동' 챌린지를 다들 많이 부끄러워하셨는데 그럼에도 응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이 인터뷰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역주행 흐름이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 혹시 바라는 성적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이에 은하는 "원래 점점 오를 때는 '차트인(진입)만 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차트인을 했을 땐 '와아 바로 차트 아웃만 안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또 '50위 안에 들어간다면 꿈 같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30위 안이라서 꿈속에서 살고 있다"라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엄지는 "모든 음원 차트에서 스크롤을 내리지 않고 보일 수 있는 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짧고 굵은 답을 내놨다.
마케팅팀은 "물론 더 높은 성적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이 곡이 대중에게 아주 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회사와 멤버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활동한 만큼 '매니악'을 오랫동안 찾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