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지만 '자만추' 쉽지 않아요"…지방 청년들의 하소연

MZ 미혼율 20년 새 급증…20대 약 93%·30대 43% 결혼 안 해
자발적 '비혼' 아닌 경우도 많아…10명 중 1명 "상대를 못 찾아서"
"지방 산다니 소개팅도 깨져" "자연스럽게 만날 場, 지원해줬으면"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23일 "청년들을 만나다 보니 (이들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가 저출산이란 생각이 든다"며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게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낼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제공


"저도 예전에는 연애를 했었는데, (지금 사는) 산단은 남자 위주로 인력이 편중돼 있고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주변을 봐도 예전에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친구들 중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된 친구 대부분은 결혼했는데, (근무형태가) 약간 불안정하거나 저처럼 중소기업에 있는 친구들은 많이 안 한 걸 보면 결국 사는 위치나 돈 같은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고요.
 
소개를 받더라도 한 번 만나면 서울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여건이 어렵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게 되고…일단 저도 좀 
체념하게 되는 거 같거든요."
 
경기도 안성 소재 산업단지에서 생산직에 종사하는 청년 이창훈씨는 미혼(未婚)이다. 결혼을 원하는 의사는 분명히 있지만, 그 마음이 향할 상대를 아직 찾지 못했다. 연애도 어려운 그에게 결혼과 출산은 '언감생심'에 가깝다.
 
이씨는 23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패밀리스토밍(Family Storming)' 5차 간담회에서 점점 결혼을 포기하게 되는 것 같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상황에 의한 '타의'라는 게 포인트다.

패밀리스토밍은 가족(Family)과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의 합성어로, 저출산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된 연속 간담회다. 이날은 주로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미혼 청년가구들이 화자로 초청됐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국내 젊은층의 미혼율은 20년 새 눈에 띄게 급증했다. 20대의 미혼율은 지난 2000년 71.1%에서 2020년 기준 92.8%로, 30대는 13.0%에서 42.5%로 각각 21.7%p·29.5%p씩 올랐다.
 
복지부 제공

기혼 인구가 훨씬 많은 40대도 같은 기간 미혼비율이 2.8%에서 17.9%까지 뛰었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MZ세대는 최근 10년간 20.1%p가 줄어 36.4%로 쪼그라들었다.
 
다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혼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해서'(17.3%)라기보다는 '자금 부족'(33.7%), '고용 불안'(10.2%) 등 여전히 환경적 요인이 막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혼 청년 10명 중 1명(9.7%)은 '결혼상대 부재'를 결혼하지 않은 이유로 들었다.
 
의지적으로 '결혼하지 않는 삶'을 택한 비혼(非婚)과 달리, 결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도 사전단계 격인 연애는 녹록치 않았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른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이상적인 교제 방식으로 꼽으면서도, '맘 같지 않은' 현실을 털어놨다.
 
복지부 손윤희 청년보좌역도 최근 한두 달 새 "정말 적극적으로 연애해보려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험담을 공유했다. 청년보좌역은 현 정부가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장관급 부처에 배치한 별정직 공무원이다.

세종에 거주 중인 손씨는 젊은층 사이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검사상 자신이 외향형인 'E'(Extroversion)임에도, 작정하고 연애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상당한 '결심'을 필요로 했다는 점부터 강조했다.
 
그는 "30대가 되니 체력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러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수고스러워진 것 같다"며 "'소개팅'을 통해 서울에 사는 남자 분을 소개 받았는데 '세종에 있다'고 하니까 만남이 성사가 (아예) 안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3번 정도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서울에 있는 분들은 지방 분들을 만나는 게 부담스럽구나 싶었다"며 "서로 일이 바쁘니 데이트는 짬을 내 만나길 바라는데 거주지가 멀면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결혼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자 자연히 출산도 동떨어진 얘기로 여겨졌다며 "갑자기 겁이 났다"고도 했다.
 
아울러 나이가 들수록 만남에서 경제적 여건 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객관적 조건이 앞서는 상황도 들어 "'연애하기 정말 힘들다'는 것을 굉장히 짧은 시간 임팩트 있는 실망감으로 겪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이기일 제1차관(가운데)이 23일 오후 서울역 인근 모처에서 열린 '패밀리스토밍' 5차 간담회('혼자서 살아요': 지방 미혼청년가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자녀 넷을 둔 '다둥이 맘'인 복지부 현수엽 인구아동정책관은 지역별 성비 불균형도 연애를 저해하는 요소로 꼽았다. 현 정책관은 "(이씨처럼) 남성들은 산업 클러스터 위주로 쏠려 있는데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몰려 있다"며 "서울의 고학력 여성들은 (만날) 남성이 없고, 지방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성들은 여성이 없는 상태"라고 짚었다.
 
흔히 '수도권 과밀화'로 인해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지방 청년들은 연애·결혼이 더 용이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서울 등을 제외하고는 20·30대 여성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복지부 제공

참석자들은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원하는지' 묻는 이기일 제1차관의 질문에 모두 "대단한 기준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단지 최소한 2인분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직장은 있어야 한다"(김유정씨, 충북)는 의견이 많았다.
 
대전에서 온 20대 여성 A씨는 "성실하고 인성이 괜찮고, 부수적으로 (서로)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며 "(주위에서 생각하듯) 어마어마하게 거창한 조건이나 '백마 탄 왕자'를 바라는 게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거도 아이를 낳는다는 가정 아래 '방 두 칸'이면 충분히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한편으로는 청년들이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고 교육·활동 등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연애 세포'를 깨울 수 있는 커뮤니티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성남시 등의 사례처럼 지자체가 나서 직접적으로 커플 매칭을 의도하는 '집단 소개팅'보다 사람을 두루 만날 장(場)을 지원해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취지다.
 
이씨는 "주식·부동산 등에 청년들이 관심이 많지 않나"라며 "지자체에서 단발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5~10회 등 모여서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게 주최하면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면서 만날(연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는 "일단 청년들이 심적으로 안정감이 있어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했다. 또 "현재 결혼을 한 친구도 거의 없지만 앞으로도 아이를 낳을 생각은 다들 별로 없다고 하더라"며 "정부가 노력하고 있단 것을 알지만, 경제적인 부분(지표)과 함께 육아에 대한 (남성의) 공동 책임 등 인식 개선에도 힘써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1차관은 "청년들이 거주 지역과 상관없이 진학·취업·결혼·출산 등 생애 전 과정에서 어려움 없이 희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혼외출산 비중은 전체 3.9%(9800명)로 전년 대비 1.0%p 상승했다. 여전히 기혼 가정의 출산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결혼은 출산으로 가는 일종의 '관문'이다. 통계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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