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이다. 집권한 지 만 2년이 안 되는 시점에 권력의 핵심부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부딪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두 사람 간 갈등의 원인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는 몰카 공작의 피해자"라는 입장인 반면, 한 비대위원장은 당초 대통령실과 같은 입장에서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는 쪽으로 태도를 수정한 것이 충돌의 발단이다.
이는 4‧10 총선을 불과 3개월도 안 남긴 상황에서 터진 사건으로 여권은 권력 투쟁에 의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갑자기 터진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이관섭 비서실장이 전달"
한 비대위원장의 입장 발표는 21일 '사퇴 요구' 보도가 나온 직후 이뤄졌다. 채널A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여권 주류 세력이 한 위원장과 만나 사퇴를 촉구했고, 한 비대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22일 의원총회를 열어 윤재옥 원내대표를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 옹립하는 절차가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한 비대위원장은 전후 사정에 대한 언급 없이 '대통령실 사퇴 요구 보도에 대한 입장'이라며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라는 짤막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맥락상 사퇴 요구는 있었으나, 그 주체가 윤 대통령인지 여부에 대해선 확인 없이 "사퇴하지 않겠다"라며 일축하는 내용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한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측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알려졌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자리에 함께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보도에 앞서 '윤핵관' 이용 의원이 대통령실이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으며, 배경에는 공천 방침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내용을 SNS를 통해 공유했다.
韓 '명품 가방' 입장, 어떻게 바뀌었나…대통령실의 질책 사유는 '공천'
한 비대위원장이 용산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은 이유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 여권 내 주된 해석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지난해 12월 26일이었다. 이에 앞서 22일 비대위원장에 내정됐다. 내정에 앞서 국회를 찾은 19일만 해도 그의 입장은 "몰카 공작"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명품백'에 대해 질문한 기자에게 '민주당의 사주' 여부를 거론할 정도로 방어적인 그였다.
여당 내부에서 '김건희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것은 김경율 비대위원이었다. 김 비대위원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모두 그렇게(김건희 리스크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말을 못할 뿐 이 리스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의혹에 대한 반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라고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이후 당 일각에선 '김건희 특검' 문제와는 별개로 적어도 '명품 가방' 리스크에 대해선 "용산 대통령실의 입장이나, 윤석열 대통령 혹은 김건희 여사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이 잇따랐다. 이에 대한 용산의 입장은 "김 여사는 불법적인 몰카 공작의 피해자"라는 대답이었다.
문제가 된 지점은 한 비대위원장 자신의 입장이 일부 선회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명품백 대응의)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할 부분이 있었다고 저도 생각한다"라고 했고, 19일엔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용산 측과) 갈등이라고 할 것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사퇴 요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반응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비대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기대와 신뢰' 철회와 관련해선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강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퇴 압박' 버틸 수 있을까…"비상사태의 비상사태"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감의 표면적인 이유는 '시스템 공천'이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거부권이 행사된 '김건희 특검' 문제를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과정에서 방어하기 위해선 탈당 행렬을 막아야 하고, 그런 맥락에서 경선에 의한 공천을 선호한다. 반면 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공관위가 내놓은 공천 룰은 대폭 '물갈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배치된다는 지적은 일찌감치 나왔었다.
그러나 공천권을 비롯해 김건희 여사 거취에 대한 이견 등을 종합하는 문제는 결국 '권력투쟁'이라는 분석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윤 대통령 입장에선 한 비대위원장이 사실상 반기를 든 상황을 그대로 용인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경북 지역 의원들의 회동이 예정돼 있고, 논의 내용은 한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혼란을 예고하는 대목은 한 비대위원장이 버틸 경우 강제로 끌어내릴 뚜렷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당헌에는 '당 대표의 궐위'에 대한 '비상사태' 규정이 있는 반면, 한 비대위원장 체제는 그 규정에 따라 들어선 비대위이기 때문에 그를 끌어내리려면 "비상사태의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