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총선 뒤 1호 법안으로 제시한 '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을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체로 야권에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당 일각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된다. 정치 혐오 정서를 반영한 해묵은 과제로 꼽히지만 자칫 국회가 대정부 견제 역할에 더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과거 안철수·유승민·김기현도 주장
사실 정치권에서 의원 정수 축소 얘기가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에서도 김기현 전 대표가 지난해 4월 30명을 감축하자고 제안했고,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도 과거 야당 대선 후보 시절 100명씩 줄이자고 밝혔었다.
물론 그때마다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했고 이슈 국면이 지나면 슬쩍 사그라졌다. IMF 금융위기 직후였던 지난 2000년 '고통 분담' 차원에서 26석 감축했던 사례가 유일했다.
"지역구 하나 줄이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의원 감축' 제안에 자꾸 이렇게 의문 부호가 붙는 건 왜일까.
먼저 그것만으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거나, 국회에 대한 신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당장 2012년 '새정치' 플랜으로 이 공약을 내걸었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17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더 시급하고 중요한 건 국회의원 특권과 세비 내려놓기"라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어 "여야 합의를 이뤄내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 거대당 반대가 워낙 심하다"라며 "지역구 하나 줄이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50명을 줄일 수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원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철 반짝인기를 위한 '떴다방식 공약(최혜영 원내대변인)"이라고 규정했다. 제3당 정의당도 "나쁜 포퓰리즘의 정수(김준우 비대위원장)"라는 입장.
OECD에 맞추려면 490명으로
자칫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로 야권에서 내거는 논리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입법부가 있고 300명 국회의원이 있기에 윤석열 정부 폭주를 견제하고 정부의 인사참사를 지적하며 R&D 예산, 새만금 예산 삭감 등 잘못된 예산안을 수정할 수 있었다"며 "선무당이 사람 잡듯 정치초보가 삼권분립을 휘청거리게 할까 두렵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서도 한 전직 의원 출신 당협위원장은 익명을 전제로 "의원 감축의 결과는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독할 국회의 권한은 줄면서 의원 개개인의 권력은 극대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외려 의원 수를 늘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인구 17만명 당 의원 1인을 선출하므로 OECD 가입국 평균(10만명 당 1인)에 맞추려면 의원 수를 반대로 490명까지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 불신 워낙 심각하기에
물론 차제에 부대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도모하자는 의견도 적잖다. 대체로 여권에서 주장한다.
국민의힘 영남권 한 중진 의원은 "숫자가 늘면 이상한 사람도 많이 들어오겠지만, 숫자가 줄면 경쟁이 치열해질 거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러면 정치 불신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도 이재명 대표 최측근인 정성호 의원이 5년 전 상임위 법안소위 중심의 국회 운영을 강조하며 "의원은 250명 정도로 충분하고 남을 것"이라는 글을 썼던 게 최근 회자하고 있다.
아울러 정치 불신, 특히 국회의원을 향한 대중의 혐오를 일부 해소하는 데 도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 유권자들이 요구한다"거나 "국민들이 줄여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시지 않느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별안간 허경영까지 소환
다만 선거철 정치 혐오 표심에 구애하려 자꾸 섣부른 공약을 남발할 경우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가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욱해서 하는 소리와 정치가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며 "이 방향으로 가면 옛날에 국회의원 100명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국회의원 100명 하자는 사람'은 과거 국가혁명당 대선 후보였던 허경영씨가 의원 200명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실을 거론한 것.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송파병 당협위원장 역시 KBS 라디오에서 "정수 문제는 사실 각론 중 각론이고 굉장히 사소한 것"이라며 "중요한 건 정당 내부 개혁이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