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있는 소속사 이미지나인컴즈 사옥에서 지난 11일 만난 KCM은 라운드 인터뷰에 참석한 취재진을 향해 연신 "진심,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20주년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20주년의 의미를 짚어 주었다고.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온 것을, KCM 본인도 알고 있다. 이번 앨범은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 담겨있다.
우선 20주년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일이 아니다. KCM은 "20년을 버틴 것이지 않나. 20주년 앨범을 낼 수 있다는 것의 감사함이 있더라"고 말하면서도 힘을 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사실 아시겠지만 앨범 하나 만드는 데 돈이며 시간이며 열정이며, 물리적으로 이런 게 엄청 많이 들어간다. 늘 앨범 발매할 때 내가 생각한 기대감에 못 미치면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되게 감정 소비(소모)가 심했다"라고 털어놨다. 예전에는 앨범 발매 일주일 전 대상포진이 올라올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미 너무 많은 앨범이 나오는 상황에서 날짜나 요일 맞추기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KCM은 "예전에는 좋은 날짜에 내고 싶어서 한 주 미루거나 그랬을 텐데, (새 타이틀곡도) 제가 가진 시그니처(signature·고유함)를 엄청 덜어냈다. 힘을 뺀 만큼, 잘되면 너무 좋겠지만 되게 진짜 상 같이, 수고했다고 팬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어서 만든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작곡가 조영수와 대화하며 방향을 잡아갔다. KCM은 "네가 표현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인제) 내려놓고 좀 편안하게 한번 해 보자 했다. 듣고 보니까 제가 너무 그 강박이 있던 것 같다. 사실 노래 후반 작업도 제가 다 하는 스타일이다. 오토메이션, 믹스까지 전반적인 걸 다 해서, 하루 종일 삐- 하는 이명이 들릴 정도로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엔 영수 형한테 다 맡긴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덜어내라'는 조영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툭툭 던지는 가벼운 느낌'으로 불렀다.
따뜻한 톤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풍성한 스트링 편곡이 인상적인 미디엄 템포 팝 발라드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는 KCM이 직접 작사한 곡이기도 하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감정이 마주하는 순간, 누군가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 아쉬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그렸다. 이번 곡의 음역은 어떤지 묻자, KCM은 "마이너스 두 키 정도 하면 편안하게 부르고, 노래 잘하는 친구들은 그냥도 부르더라"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은영이에게'는 (보통 키를) 3개 내려도 안 된다. 그건 저도 안 된다. 저도 이제 너무 피지컬이 떨어져서 한 곡 부르면 바로 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다"라며 웃었다. KCM은 "저희 때, 2000년대 초반에는 약간 김경호 형이나 김종국 형같이 뭔가 고음을 굉장히 질러줘야 하는 음악이 많이 사랑받다 보니까 굳이 안 높여도 되는데 높여서 진짜 녹음할 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회상했다.
KCM은 "당연히 제가 더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노래에서) 기승전결을 원하는 리스너(청자)들도 있고"라며 "유혹을 참아냈다. 오히려 연습하면서 저음역도 연습하게 되고 계속 배우게 된다. 덜면 던 만큼 채워지는 것 같다. 진짜 배움은 끝이 없구나 싶더라"라고 답했다.
또 다른 신곡 '우리들'(To my fans)은 KCM의 팬 '인뮤엠'(Into the Music of KCM)을 위해 만든 곡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는 팬 송이다. KCM이 작사, 작곡했다. KCM은 "팬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각자의 생활이 생기면 마음도 처음 같지 않을 수 있다. 저를 보는 걸 미안해하더라. '오빠, OO에요. 잘 지내셨죠? 미안해요' 그러더라. 제가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데… 그런 걸 보고 가사를 십 분 만에 써 내려갔다. 최대한 '진짜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곡 2곡과 인스트루멘털 버전까지 총 4곡을 제외하면 10곡이 남는다. 2018년 이후 KCM이 디지털 싱글로 발표해 온 자작곡 10곡을 리마스터링해 수록했다. 그중에서도 3번 트랙 '새벽길'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곡이다. 힘들었던 시기에 썼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힘든 일이 생겨도 누구에게 이야기할 곳이 없고, 믿을 만한 사람이 생기면 의지하게 돼 속얘기를 하는데 그게 오히려 약점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는 KCM은 큰 금액을 사기당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KCM은 '흑백사진' '버릇처럼 셋을 센다' '은영이에게' '너에게 전하는 아홉가지 바램' '알아요' '스마일 어게인'(Smile Again) '안녕' '죽도록 사랑해' 등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다. 하지만 이런 그마저도 발표한 노래가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얻었을 때의 실망을 다스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구나 다 그럴 거예요. 티를 못 내서 그렇지. 왜냐하면 저희 때 음악 하는 친구들이 음반 내는 걸 좀 되게 좀 두려워해요. 너무 시장이 빨리 바뀌고… 이게 사실 아시겠지만 앨범을 만드는 데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 소비가 정말 크거든요. 그 앨범이 나왔을 때 예전만큼 많은 리스너들이 많이 사랑해 주지 않을 때 좌절감, 박탈감, 실망감 그런 게 생각보다 너무 커요. 그게 무뎌지기까지 정말 좀 오랜 단련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 중압감이 되게 컸죠. 되게 컸고… 근데 돌이켜보면 저는 실패라고는 생각 안 해요. 주목받지 못했던 곡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게 음악이니까. 지나고 보니까 예전에도 전 예능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예능을 하면서 중압감이 줄어든 거 같진 않지만 좋은 회사를 만나 다방면 활동을 하면서 좀 덜었어요. 스타들은 계속 나올 거고 계속계속 너무 빠르잖아요, 음악 시장이. 이 빠른 시장에서 20년을 해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좀 기특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물론 잘되면 너무 좋겠죠. 결과에 치중하지 않고 일 년에 쉬지 않고 발맞춰서 음악을 하려고 하는 게 주가 되고 목표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중압감은 진짜 적지 않죠. 그러니까 쉽게 음반을 내지 못하는 거 같아요."
팬들의 고마움을 새삼 깨달았을 때는 '새벽길' 발표 시기다. 사람한테 치여서 너무 지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을 때 발표한 '새벽길'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줬다. KCM은 "제 이야기를 썼는데 그거로 위로가 되고 교감했다는 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더라"라며 "내 이야기를 직접 해도 내 이야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멈추지 않고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새벽길' '생각' '버릇처럼 셋을 센다' '이런 이별도 있어' '나만 아는 사랑이었어' '그냥 좋아'(with 아웃사이더) '오늘도 맑음'(Dear Dad) '아름답던 별들의 밤' '바보라고 불러도' '하루가 다가도록'과 '우리들'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인스트루멘털까지 총 14곡이 수록된 KCM의 20주년 정규앨범 음원은 지난 14일 공개됐다. 한정판으로 제작한 실물 앨범도 이날 같이 발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