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정유미 감독 신작 '서클', 베를린영화제 공식 초청

'서클'(Circle)의 한 장면. 매치컷(주) 제공
시공간을 가늠할 수 없는 텅 빈 하얀 공간. 나뭇가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한 소녀가 나뭇가지를 응시한다. 그러다 '서클'(Circle)을 그린다. '무(無)'의 세계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서류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걷던 중년의 남성이 '서클'에 안착한다. 이후, 남녀노소, 동·식물 할 것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클' 안으로 들어간다. 한발 재겨 디딜틈 없는 공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생기 없는 눈빛. 각자 신문을 읽고, 빵을 먹는 등 당장 할 일은 하지만, 그다음 행보는 알 수 없다. 그저 '서클' 안에 머무를 뿐이다. 결국 '서클'은 '무목적성'의 공간이 됐다.

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하나의 단서인 '시간', 그 상관관계 속에 감독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감독이 군더더기 없이 툭 던진 하나의 '서클'. 러닝타임은 7분이지만, 관객은 그 곱절의 시간 동안 자신의 '서클'을 생각한다. '서클'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해방하기도 하는 혼돈의 시간은 관객의 몫이다.

매치컷(주) 제공

정유미 감독의 새로운 단편 애니메이션 <서클(Circle)>이 제7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그는 이미 수학시험(2010), 연애놀이(2013), 존재의 집(2022)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이번에 네번째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4회 이상 초청받은 연출자는 우리나라에서 정유미 감독이 최초다.

매년 2월 열리는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칸 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비평가와 감독 위주의 예술 작품 발굴을 중시한다. 올해 74회 영화제는 2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독창적인 단편 애니메이션 <서클(Circle)>, 고정된 관념의 벽을 벗어나길 갈망하는 자유의 메시지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제작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서클(Circle)>은 세상의 수많은 관념이 만드는 벽에 대해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정유미 감독은 이를 통해 본래 존재의 목적을 잃어가고, 타인들과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느라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서클(Circle)>은 심플한 이야기 구성으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애놀이>, <존재의 집>, <파도>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정유미 감독 특유의 세밀한 연필 드로잉 기법은 작가만의 고유한 개성을 담아낸다.
 
정유미 감독의 작품은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바 있다. 그는 애니메이션에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지만, 결국 세계적인 것이 됐다.

정 감독은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애니메이션 연출을 전공했다. 2009년 연출한 단편 애니메이션 <먼지아이(Dust Kid)>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으면서 국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연애놀이(Love Games)>가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2010년 단편 애니메이션 <수학시험(Math Test)>은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받았다. 최근작인 <파도(The Waves)>도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로카르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받는 등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 작가이기도 하다. 부산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정 감독은 <파도>의 영감을 해운대 바닷가에서 얻었다고 밝힌바 있다.

<먼지아이(Dust Kid)>는 2014년 그림책으로도 출간되면서 한국 그림작가로는 처음으로 볼로냐 라가치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5년 <나의 작은 인형상자(My Little Doll's House)> 그림책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연애놀이(Love Games)>로 대상인 그랑프리를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2022년 <존재의 집(House of Existence)>에 이어 총 4회 연속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된 만큼, 신작 <서클(Circle)>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기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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