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60·사법연수원 21기)은 15일 사법의 우선 당면 과제로 '재판지연 해소'를 꼽으며 인사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천 처장은 이날 오전 10시 대법원 무궁화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신속·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사법부의 소명"이라며 "그럼에도 분쟁 해결의 적기를 놓쳐 처리 기간이 장기화되는 등 최종적 분쟁 해결기관인 사법부의 역량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제기되는 현실이 뼈아프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심의 최종 심판자이자 법관인사 이원화의 근간인 고법판사들이 건강과 육아 등 여러 원인으로 대거 사직을 반복하는 현상은 사실심의 안정적 운영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천 처장은 재판지연 해소 등을 위해 재판부를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 인사 개선과 관련한 방안을 내놨다.
그는 "국민에게 도움 되는 연속성 있는 재판을 위해 한 법원에서는 가급적 한 재판부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인사 및 사무분담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재판장 2년, 배석 판사 1년으로 정해진 재판부 교체 주기를 각각 3년과 2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 처장은 또 "법관인사 이원화가 사실상 완성된 고등법원 중심으로 기수 제한 등 다수 지방법원 법관의 진입장벽을 없애는 한편, 불필요한 전보 등 인사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마련해 이원화의 토대 위에 사실심 전체의 유기적인 운영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처장의 이런 발언은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인사를 분리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 손질을 비롯해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한 법관 인사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천 처장은 "바람직한 재판을 위한 인적 기반 마련에 필수적인 법관 증원 및 젊고 유능한 법관 충원, 오랜 경륜과 경험을 갖춘 법관의 적극적 활용을 위한 제도의 도입, 재판연구원 증원 및 법원 공무원의 역할 확대도 필요하다"며 "비선호 보직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법관 및 직원에게는 합당한 처우가 이뤄지도록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과 함께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한편 천 처장은 취임사에 앞서 "평소 철두철미한 업무처리로 정평이 난 판사님 한 분이 과로 속에 급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는 비보를 접했다"며 지난 11일 별세한 강상욱(47·33기) 서울고법 판사, 숙환으로 숨진 법원 행정관을 각각 언급하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또 CBS노컷뉴스가 지난해 11월 말부터 연속 보도한 '사법부 해킹' 사태를 비롯해 사법전산시스템 마비로 인한 재판중단, 대국민 사법서비스의 한 축인 공탁 부문 횡령 등을 지적하며 국민의 신뢰를 잃는 적신호는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또 인공지능(AI) 활용 등 대국민 사법서비스 편의성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법원행정처의 사무를 관장하고,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하며, 법원의 사법행정사무 및 그 직원을 감독하는 자리로, 대법관 중 한 명이 겸직한다.
천 처장은 1995년 법관으로 임용돼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지법 부장판사, 부산고법 부장판사,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거쳐 2021년 5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2021년 5월부터 약 2년 8개월간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김상환 대법관은 재판 업무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