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야권이 여야 합의 없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는 문제 의식과 함께 사실상 무소불위의 특별조사위원회 권한은 이미 수사가 이뤄진 사안을 정쟁화하고 진정한 유족 지원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있다. 다만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인데다가, '쌍특검법' 등 연이은 거부권 행사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3일 "법안의 문제점은 분명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신중히 숙고하고 있다"며 "당과 정부 등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특별법 자체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상황이다. 특별법은 이태원 참사 진상 재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미 이태원 참사에 대해 5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수사를 벌여 당시 서울경찰청장과 용산경찰서장 등 책임자들을 사법 처리 중인 상황에서 특조위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또한 특조위가 조사 대상자에 대한 동행명령, 청문회 실시, 수사기관 고발권, 법무부 출국금지 요청권 등까지 권한을 갖는 것은 사실상 '특검' 수준의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해 야권의 정쟁 목적이 숨어 있다는 판단도 자리한다.
특조위의 조사범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조위가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조위가 오히려 온전한 피해자 보상 길목을 틀어쥐고 방해가 될 수 있다"며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 특조위가 수백억원대 예산을 쓰면서도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사례가 벌어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야권이 강행 처리한 법안이라는 점에서 거부권 행사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 "여야 합의 없이 또 다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말씀드리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별법 문제 판단, 여론 설득 '관건'…잇따른 거부권은 부담
다만 대통령실은 특별법의 여러 문제점과 관련해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데다 유가족들이 특별법 공포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참사 피해자를 매정하게 외면한다는 게 전혀 아니기 때문에 법안의 문제점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잇따른 거부권 행사에 따른 부담도 일부 작용한다. 윤 대통령은 최근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을 포함해 취임 후 네 차례, 총 8건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여권에서도 특별법이 야당의 정쟁 목적이 담겼다는 인식에는 공감하면서도 거부권 건의 여부는 숙고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권 관계자는 "특조위의 중립성, 공정성 훼손이나 무소불위 권한은 분명 문제"라면서도 "거부권에 대한 여론의 시각, 진상 규명에 대해 미진하다고 느끼는 국민 정서도 일부 있어 법적인 측면과 정무적인 측면까지 고민을 같이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 여부에 대해 "국회에서 다음주 금요일(19일)에 정부로 (법안을) 이송할 예정이다. 그 전에 재의요구권을 건의할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개정안을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