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습에 놀란 쿠팡, LG생건과 화해…CJ는 다른 길?

박종민 기자

납품 공급가 관련 갈등을 빚으며 손을 끊었던 쿠팡과 LG생활건강이 약 4년 9개월만에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소비자들은 이달 중순부터 LG생활건강의 주요 제품들을 다시 로켓배송으로 주문할 수 있게 됐는데, 쿠팡과 CJ제일제당과의 갈등은 진행형이기에 향후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4년 9개월만 극적 합의…배경엔 中 이머커스·규제 이슈


12일 쿠팡과 LG생활건강은 엘라스틴, 페리오, 코카콜라, CNP 등 LG생활건강 상품 로켓배송 직거래를 재개하기로 했다. 또 새롭게 LG생활건강의 오휘, 숨37, 더후 등 럭셔리 화장품을 '로켓럭셔리' 품목으로 포함하기로 했다.
 
양측은 그동안 거래 재개를 위한 협의는 계속해왔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답보 상태만 걸어왔다.
 
그러다 최근 협상이 급물살을 탔는데, 쿠팡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국내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상황이 쿠팡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최근 코카콜라와 같은 LG생활건강의 인기 제품들이 알리에 입점하는 등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기에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알리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중국산 짝퉁·저품질 논란에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들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국내 인기 상품으로 판매 영역을 넒히는 등 주목도가 올라가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사용자 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앱은 알리익스프레스로 371만명이 증가했다.
 
결국, 쿠팡이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움직일 수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또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연매출액, 시장 점유율 등을 기준으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쿠팡에는 부담이다. 주요 제조업체들과 각을 세우며 정부 눈밖에 나기보다는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LG생활건강 입장에서는 실리를 챙길 수 있게 됐다. 이커머스 업계 1위 채널에 판로를 다시 확보하게 되면서 소비자 접점이 커지고, 주주들의 호응도 기대할 수 있다. 추가적인 매출 상승도 노려볼 수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미 5년 가까이 쿠팡 없이 지내왔던 LG생활건강이기에 갑작스럽게 쿠팡과 다시 손을 잡을 동기는 약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화장품 부문이 중국 경기 둔화의 여파로 부진했을 뿐, 국내 음료 매출은 지속 성장해왔고, 생활용품 분야도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탄탄한 인지도를 갖춘 브랜드들이 이미 쿠팡 외에 다른 온·오프라인 유통망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팡과의 거래 재개는 다른 유통 채널에서 판매되던 수요가 쿠팡으로 일부 이전되는 효과가 크지, LG생활건강의 전체적인 매출 증가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LG생활건강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쿠팡이 더 진전된 거래 조건을 제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거래 재개는 다른 채널에서 판매되던 아랫돌 매출이 쿠팡이라는 윗돌 매출로 옮겨가는 수준이지, LG생활건강에게 엄청난 메리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팔아도 남는 게 없어서 손을 끊었던 것인데 다시 손을 잡은 건 쿠팡이 거래 조건과 관련해 상당히 양보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LG생건과는 다른 CJ제일제당…오히려 반(反) 쿠팡 확대 관측도

 
이처럼 중국발 이커머스의 공습과 당국의 규제 압박에 다급해진 쿠팡이 적극 움직이면서 갈등이 해소되자, 업계의 관심은 쿠팡과 CJ제일제당의 다툼에 쏠리고 있다.
 
CJ제일제당도 납품 공급가에 대한 이견으로 지난 2022년 말부터 쿠팡에 햇반·스팸 등 주요 제품 공급을 중단해 현재까지도 로켓배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사업 영역이 비슷한 CJ그룹 전체와 쿠팡 전체의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 모두 거래 재개를 놓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성과는 없고 각자도생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CJ제일제당은 신세계 유통 3사(이마트·SSG닷컴·G마켓), 컬리, 네이버, 배달의민족 등과 이벤트·프로모션을 전개하는 등 채널 다각화에 열을 올리고 있고, 쿠팡은 이 빈자리를 중소·중견기업들의 제품으로 채우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뷰티 사업에 힘쓰고 있는 쿠팡은 CJ올리브영을 견제하고 있고, OTT 분야에서도 쿠팡 플레이와 CJ ENM의 티빙, 물류 영역에서도 쿠팡로지스틱스와 CJ대한통운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CJ그룹 손경식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넷플릭스, 쿠팡 등 새로운 혁신적인 경쟁자가 등장해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위협하고 후발주자들이 우리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쿠팡을 경쟁 대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여기에 현재 CJ대한통운이 쿠팡의 새로운 경쟁자인 알리익스프레스와 물류서비스 독점 계약을 맺은 상황이기에 CJ가 주도하는 반(反) 쿠팡 전선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CJ와 쿠팡은 사업 영역이 겹치고,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해 단기간에 손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다른 제조업체들이 알리익스프레스 입점을 택한 것처럼 CJ제일제당도 알리에 들어가는 등 판로 다변화에 더 힘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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