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찾아가는 신년업무보고회를 이유로 지역을 찾아 굵직한 현안 정책들을 발표하면서, 해당 지역 야권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지역에서 선심성 정책들을 발표하는 것은 여권 후보들을 지원사격하려는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위기론 진앙지 '경기도' 순회 尹, '선거개입' 논란
11일 대통령실과 경기지역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경기도 용인시를 10일에는 고양시를 차례로 방문했다. 대통령실은 예년과 달리 올해 부처별 신년업무보고를 '현장 민생토론회'로 진행하고 있다. 10여 차례로 계획된 토론회는 총선 한 달 전인 3월 초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현장 방문이 단순 토론회로 그치는 게 아니라 민감한 지역 현안과 관련한 현정부의 정책 발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기 신도시인 일산에서 윤 대통령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1‧10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 과정은 전국에 80분간 생중계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를 포함한 수행단을 이끌고 지역을 돌며 표심을 자극할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냄으로써, 민심을 자극해 여권을 우회적으로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윤 대통령이 다녀간 지역은 이른바 '윤심' 후보의 등판이 예상되는 지역구들로 알려졌다.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는 처인구(용인갑)에는 국민의힘 후보로 김대남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 지역은 정찬민(국민의힘) 전 의원이 뇌물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공석인, 소위 사고지역구로 전략공천할 경우 대통령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이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일산동구는 윤 대통령 캠프 출신인 김종혁 전 국힘 비대위원이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 방문에 따른 후광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는 지역들이다.
대통령실은 민생토론회 기획 이유에 대해 "'민생과 밀접한 주제를 놓고 심도 있게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장소는 주제와 관련된 정책 현장을 우선 고려했다"고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지역구 민주당 후보들 "대통령이 선거판 흔드냐" 반발
대통령의 노골적인 현장 행보에 무엇보다 해당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야권 주자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용인갑에 출마 예정인 이상식(민주당‧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예비후보는 "대기업들 주체로 초대형 반도체 투자가 이뤄지는데 마치 정권의 치적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며 "국가 수장까지 와서 행사하듯 신년보고를 받는 것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양정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김영환(민주당‧전 경기도의원) 예비후보는 "대통령과 가까운 비대위원 출신 당협위원장이 있는 동구를 찾아 특정 세력을 챙기려는 행보를 보였다"며 "주민에게 헛바람을 넣어 총선 분위기를 띄우려는 사전선거운동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후보들은 윤 대통령이 발표한 정책들을 놓고 '순수성'과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예비후보는 "재건축 이슈는 10년 이상 장기계획으로 추진할 사안인데, 대통령 말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명한 시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갑 출마 예정인 김성회(민주당) 정치연구소 와이 소장은 "여권에서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쓸 카드가 많다고 했던 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며 "재건축 규제 완화는 지역민을 위한 것인지, 사업 전망이 어두워진 건설업계를 위한 정책인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새해부터 선심 쓰듯 발표하는 것은 격전지로 꼽히는 지역을 공략하려는 의도로 의심된다"며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후 단 한 번도 기자 앞에 서지 않으면서, 부처에서 추천한 국민들이 참석해 대통령 말을 듣는 게 무슨 대화인가"라고 직격했다.
민주당 경기도당도 '대통령의 위헌적 선거개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당 경기도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현장에서 업무보고를 받으며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있다"며 "하지만 민심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했다.
"반복된 대통령 선거개입 논란, 유권자 피로감"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만큼, 선거 국면에 오해를 살만한 행보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적인 선거 관련 발언으로 탄핵 소추까지 됐고,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 전 지방 방문으로 선거개입 비판을 받았다"며 "이번 윤 대통령의 광범위한 현장 방문 행사는 대통령실이 기획까지 주도해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 지방선거에 이어 비슷한 논란이 계속돼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심해질 수 있다"며 "영향력이 막대한 대통령이 큰 선거를 앞두고는 지방행사 참석하는 것조차 자제해 논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