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탈당을 선언하며 민주당을 향해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24년 몸담은 민주당을 떠나 '원칙과상식'과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을 벗어나,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예전 모습을 잃었다며 비판을 가했다.
그는 "'마음의 집'이었던 민주당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면서도 "민주당은 저를 포함한 오랜 당원들에게 이미 '낯선 집'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자랑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 '방탄 정당'으로 변질했다"며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구현할 만한 젊은 국회의원들이 잇달아 출마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내 비판자와 저의 지지자들은 2년 동안 전국에서 '수박'으로 모멸 받고, 처단의 대상으로 공격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표가 재판받는 상황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이 대표) 자신의 사법리스크로 '검찰폭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전 대표는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다)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지금의 정치로는 대한민국을 살릴 수 없다.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정치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며 "무능하고 부패한 거대양당이 진영의 사활을 걸고 극한투쟁을 계속하는 현재의 양당 독점 정치구조를 깨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당제 실현을 위해 개헌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이 전 대표 입장이다. 그는 "다당제 실현과 함께 개헌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했으면 한다"며 "현행 제도를 고쳐, 대통령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고 대통령의 권력을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앞서 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상식'과 뜻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극한의 진영대결을 뛰어넘어 국가과제를 해결하고 국민생활을 돕도록 견인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그 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힘을 모아야 한다. 저는 우선 민주당에서 혁신을 위해 노력하셨던 의원 모임 '원칙과 상식'의 동지들과 협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원칙과상식'에는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이 포함돼 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피폐에는 저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민주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2021년에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자를 낸 것은 제가 민주당 대표로 일하면서 저지른 크나큰 실수였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위성정당 허용 결정에 제가 동의한 것도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이 전 대표는 최대한 많은 의석수를 얻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또 제3지대에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신당 목표 의석수'를 묻는 질문에 "양당의 철옹성 같은 독점 구도를 깨뜨리기 위한 의미 있는 정도의 의석이 필요하다. 되도록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준석 전 대표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 누구라도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 현역 의원의 신당 합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치인의 거취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되고 정리해야 할 문제가 복잡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민주당 의원 129명이 이낙연 전 대표 탈당을 만류하는 성명을 낸 것에 대해서는 "제가 그분들의 처지였다면 훨씬 더 점잖고 우아하게 말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있다"며 "제 기자회견을 목전에 둔 시점에 그런 말씀을 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런 노력을 평소 당의 변화를 위해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국회 소통관에는 이 전 대표를 응원하는 지지자가 대략 100명 가까이 운집했다. 이들은 이 전 대표에게 "대한민국을 지켜달라", "나도 민주당을 탈당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후 지지자들과 만나 "이제까지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나섰다. 새로운 길은 늘 외롭고 두렵다"라며 "그러나 누군가는 가야 그것은 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구 선생이 애송했다는 서산대사 한시 중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문구를 인용하며 "오늘 내가 걷는 발자국은 훗날 뒷사랑의 길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 심정으로 나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