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1일 전격 탈당을 선언한다. 양당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당을 만들겠다는 명분인데, 당 대표와 국무총리 등 일생의 커리어를 민주당에서 이룬 그가 뒤늦게 당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명분이 없다는 질타가 곳곳에서 쏟아진다.
李 사법리스크 내부폭로…"반명 외 명분 뭐가 있나"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국회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 창당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호남(전남 영광) 출신인 이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5선을 지냈고, 전남지사와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 기세를 몰아 2020년에는 '어대낙(어차피 당대표는 이낙연)'으로 불리며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말 그대로 민주당에서 꽃을 피웠고 한때는 '대세'로까지 통했던 그다. 이 전 대표도 지난 2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24년 전에 입당했을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민주당은 제 '정신의 집'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이 전 대표의 탈당에 명분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친명(親이재명)계 4선 정성호 의원은 지난 9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민주화·노동 운동의 많은 희생의 대가로 여기까지 온 분 아니겠는가. 그 혜택을 받았던 가장 대표적인 분 아니겠나. 꽃길만 걸어오신 분"이라며 "이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이유가 이재명 대표가 싫다는 것, 반명(反이재명) 외에 뭐가 있는지 좀 묻고 싶었다"라고 직격했다. 한 초선 의원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전 대표 측근들도 사실 그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원내에서도 이재명-이낙연 양측의 입장 조율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전 대표의 탈당은 그의 최측근인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이 이재명 대표를 '확인사살'하면서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남 전 실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자신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언론에 최초로 제보한 인사라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은 이 전 대표도 용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를 이 전 대표 측이 직접 고발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그날 기자회견으로 이 대표와 갈라지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이후부터는 민주당에서 같이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당대표 시절에도 '명분 없는' 실책으로 비난
이 전 대표는 당대표 시절에도 명분 없는 판단으로 당내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21년 신년사에서 했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발언은 민주당 지지층에게 큰 반발을 샀고, 이후 당 지지율이 급락해 '이낙연 대세론'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정부의 부동산 대란, '조국 사태' 여파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사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단지 '보여주기식' 해결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전 대표는 이밖에도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지휘한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자당(自黨) 소속 지자체장들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따르지 않고 당원 투표에 따라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는 무리수를 뒀다. 당시 서울·부산 모두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성비위 논란으로 공석인 상태였는데, 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참패였다. 이 전 대표는 명분 없는 판단으로 또다시 실책을 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로 다른 출발점, 신당 철학 공유 어려워"…제2의 손학규?
민주당은 결국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이 4월 총선 경합 지역에 후보를 내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려 할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지역에서는 1~2천 표의 근소한 차로 당선인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전 대표 신당이 경합지에 후보를 내면 민주당 표가 갈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이 지점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이 전 대표 신당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수도권에 후보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외연 확장을 위해 '이준석 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 비명(非이재명)계 의원은 "이준석 신당이 나흘 만에 온라인 당원 4만 명을 확보한 건 분명 실체가 있다는 의미다. 지금 상황에서 아쉬워하는 건 오히려 이 전 대표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와 이준석(가칭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 전 대표가 신당 창당 과정에서 잡음 없는 협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낙연·이준석 전 대표는 각각 김대중·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출발점부터 너무 다른 두 사람이 한 당에서 정치철학을 공유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전 대표 측에선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5일 CBS와의 인터뷰 중 언급한 '느슨한 연대(비례대표 공천은 각자, 지역구는 같이)' 구상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전직 대표 간 연대론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부터 삐걱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손 전 대표 역시 민주당 대표까지 지낸 뒤 유승민, 김한길, 안철수 등과 함께 손잡고 바른미래당을 창당했지만 내부 분열로 당이 3등분으로 갈라지면서 정치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