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평론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현재 타이완 문단의 중심에 떠오른 작가 천쓰홍의 장편소설 '귀신들의 땅'이 출간됐다.
한 일가족을 중심으로 타이완의 아픈 현대사를 담아낸 '귀신들의 땅'은 타이완에서 가장 큰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12개 언어로 출간되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소설은 천씨 집안 그리고 이들과 얽힌 두 명의 귀신을 통해 타이완의 슬픈 역사적 배경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온갖 신들을 모시는 묘당과 법사가 있고, 조상과 귀신을 대접하는 엄격한 습속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군침 도는 음식들이 등장하며, 그 가운데 시골 마을 고유의 기이한 풍습이 만화경처럼 펼쳐져 시끌벅적하고 흥겨운 타이완의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타이완의 이국적 풍속과 풍경도 아홉 남매의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누가 누굴 죽였고, 그 죽음의 사연 뒤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파헤쳐가며 한 편의 범죄 스릴러로도 읽힌다. 소설 속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등장하는 두 귀신.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죽은 자와 산 자가 한데 모이는 중원절 제사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타이완은 원주민들이 살던 시절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명나라 장수 정성공 일파에 의해 점령당했고, 근대에 들어서는 50년간 일본에게 식민 통치를 당했다. 일본이 물러간 이후엔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졔스의 국민당 세력이 대만을 점거했고, 이들은 반국민당 운동을 벌인 타이완 시민 2만8천여 명을 학살했다. 장졔스 일가와 국민당의 일당 독재는 무려 1987년까지의 기나긴 계엄령 속에 이어지다가 민진당이 탄생하면서 막을 내렸는데, 이때까지도 타이완에서는 갖가지 이유로 백색 테러가 자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투옥되었다.
책은 천씨 집안의 내력을 좇으며 이 같은 타이완의 슬픈 역사적 배경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 천쓰홍은 소설 속 톈홍과 흡사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농가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게이로 살아가면서 타이완 정부가 동성애를 비롯한 갖가지 구실로 많은 사람을 탄압하고 체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소설 속에서 '밍르' 서점의 두 주인과 또 다른 인물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 역시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드러낸다.
귀신들의 땅, 오로지 고통과 상처만 존재했던 이 기이하고 불길한 땅을 떠도는 한 서린 목소리들을 작가 천쓰홍은 우리네가 살풀이 굿을 하듯, 그들의 강령술로 소환하듯 불러내 하나하나 위로하여 제자리로 돌려보내려 한다.
천쓰홍 지 |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5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