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수사권 넘긴 국정원, 수사 '조정' 권한도 축소

시행령 개정안 지난달 국무회의 통과
공안사범 수사 신병처리·공소보류 때
국정원장 '강제 조정→의견 청취'
文정부 검찰 과거사위도 폐지 권고
법조계 "초월적 권한의 근거 조항 폐지"
수사당국 "아직 사례 없지만…변화에 대비"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대공사건 수사에 직접 관여하는 근거로 삼았던 '안보수사조정권'이 40여년 만에 대폭 축소됐다. 검·경 등 수사기관이 주요 공안사범을 구속할 때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의견 청취" 수준의 권고 조항으로 수정됐기 때문이다. 이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올해부터 경찰에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의 후속조치 일환이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무회의를 열고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해당 시행령은 중요 정보사범, 즉 내란·반란·이적·군사기밀누설·국가보안법 위반 등 공안사범의 신병처리(8조 1항)나 공소보류(9조 1항) 과정에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기존 조항을 "의견을 듣는다"로 수정한 것이 핵심이다.

국정원의 '안보수사조정권'은 1964년 중앙정보부 보안업무규정 제정 때 처음 도입됐다. 당시 규정은 수사기관이 정보사범의 신병을 처리할 때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를 받도록 했다. 정보사범 신문이나 공소보류 땐 정보부장의 '승인'이 필요했다. 1981년 중정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규정도 개정됐다. '지시'와 '승인'을 '조정'으로 하향한 것이다.

이 규정은 국정원이 대공 수사에 개입·관여하는 초월적 권한을 행사할 근거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이 △정보사범의 신문과 신병처리, 공소보류 결정 등에 대해 반드시 국정원장 조정을 받고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불송치 결정을 뒤집을 때도 국정원장과 협의하도록 강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앞서 문재인 정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도 이 시행령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폐지 및 개정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2018년 10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고문 은폐 사건' 조사 결과를 밝히면서 "김근태 고문·은폐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기획·조정에 의해 이뤄졌다"면서 국정원의 안보수사조정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짚었다.

당시 과거사위는 제8조와 제9조를 독소 조항으로 꼽았다. "대공 사건이라는 이유로 정보기관이 수사에 관여하는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유물이며, 정보기관이 검찰 공소권을 통제하는 규정은 상위법인 형사소송법에도 저촉된다"고 했다. 두 조항 모두 이번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손질됐다.

법조계에선 대공수사에 한해서라도 인신 구속과 소추라는 검찰의 고유 권한에 초월적으로 관여하던 정보기관의 권한이 '의견 제시와 협의' 수준으로 낮아진 것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중정이 안기부로,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정보기관의 수사 개입 권한도 지시에서 조정, 다시 의견 청취로 함께 줄어든 것이다. 규정 제정부터 60년, 안기부 창설 기준으로는 43년이 걸렸다.

대공수사에 밝은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강제적인 조정권이 의견 청취가 된 것은 행정적 권한에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면서 "규정 개정 이후 실제 적용할 만한 케이스가 아직은 없지만, 향후 수사를 진행하면서 국정원과 긴밀히 협의할 수 있도록 실무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내사와 입건, 기소, 재판 결과 등을 국정원에 통보하도록 강제하고, 탈북·망명자를 신문할 때 국정원장 조정을 받도록 하는 규정은 기존대로 유지됐다. 국정원의 정보수사 조정권의 근거 조항도 골격이 그대로 남았다. "대공 수사 절차가 기존에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린다. 국정원은 안보수사협의체 등 합동수사기구를 통해 검경의 대공수사에 관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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