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성가대를 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니, 호흡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건강하던 아내였다. 그러던 김태종씨의 아내는 2011년 11월, 이마트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2년 8월, 김씨의 아내는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어 병원에 입원했다. 이미 폐가 너무 망가진 상태라고 했다. 중환자실을 16번 드나들며 12년 1개월을 버티던 김씨의 아내는 결국 2020년 8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김씨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반드시 가해 기업들에게 유죄가 선고되는 것. 산소호흡기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전국 곳곳에 있는 지금, 법원이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허정자씨의 바람도 같다. 29년 전인 1995년 10월 5일, 허씨는 건강한 딸 의영이를 얻었다. 때마침 TV에서 SK의 가습기살균제 광고를 봤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다. 허씨는 매일 가습기를 틀었고, 아이의 코밑에도 바로 대주며 쐬게 했다.
아이의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태어난 지 50일 만인 그해 11월, 의영이는 모세기관지염과 흡입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영이는 그렇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첫번째 사망자가 됐다. 허씨는 29년이 지난 지금도 탄원서를 쓴다. 자신의 딸 의영이가 살아보지 못한 29년을 앗아간 가해 기업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원하면서.
오는 11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기업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들이 가해 기업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 살균제 형사재판 항소심 유죄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사람을 죽고 다치게 한 가습기살균제라는 살임제품을 만들어 판 제조판매회사들에게 형사책임이라는 당연한 단죄가 내려져야 한다"고 외쳤다.
앞서 지난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기업 임직원 13명에 대해 무죄 선고를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독성물질인 CMIT·MIT와 폐질환·천식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지난해 10월 26일 검찰은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결심 공판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는 각각 금고 5년,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는 금고 3~5년을 구형했다. 오는 11일 2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의해 지금까지 피해자로 인정된 구제대상은 모두 5667명"이라며 "5667명의 피해자 중 CMIT와 MIT 살균성분의 8개 제품사용자는 모두 2312명으로 전체의 41%"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CMIT와 MIT 살균성분의 제품을 사용하다 죽고 다친 피해자가 많은데도 법원은 1심에서 제조판매회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피해자와 국민의 분노를 샀다"면서 "항소심에서 검찰은 1심 판결이 잘못됐음을 따졌고 추가 증거와 전문가 증언을 진행하고 최고 5년형을 구형했고, 때문에 1월11일 나오는 항소심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살인제품이 판매된 지 30년, 사회적 참사로 알려진 지 14년째인 2024년이 시작됐다. 너무나 늦었지만 1월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고한 소비자와 국민을 보호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면서 "소비자를 죽고 다치게 하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법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