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일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배경은 법안 자체가 총선을 겨냥한 '악법'이자 위헌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신속한 거부권 행사는 총선까지 야당이 주도하는 정쟁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재가 사실을 전하며 "이번 특검 법안들은 총선용 여론 조작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많은 문제점이 있다"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문제점으로는 특검 후보 추천에 여당이 배제된 점, 수사 상황을 언론에 공개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 실장은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항상 여야 합의로 처리해 오던 헌법 관례를 무시했고 재판 중인 사건 관련자들을 이중으로 과잉 수사하여 인권이 유린되며 총선 기간에 친야 성향의 특검의 허위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라고 했다.
야권이 김 여사가 연루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경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벌어졌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야권의 정치 공세라는 입장이다.
이 실장은 "12년 전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 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한 사건을 이중으로 수사함으로써 재판받는 관련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50억 클럽 특검법'에 대해선 "친야 성향의 특검이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훼방하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 결과를 뒤집기 위한 진술 번복 강요, 이중 수사, 수사 검사에 대한 망신 주기 조사, 물타기 여론 공작을 할 것도 뻔히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앞서 '쌍특검' 법안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이 의결됐다. 윤 대통령은 이를 즉시 재가했다.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일 만이다.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12일), 간호법 제정안(19일), 노란봉투법 및 방송3법 개정안(22일) 등 거부권을 행사한 다른 법안보다 빠르게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거부권 행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브리핑한 것도 처음이다. 그만큼 사안을 중대하게 여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거부권 행사가 매우 신속히 이뤄졌다'는 질문에 "여러 가지 검토를 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더 심사숙고할 일이 없었다"며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입장 밝히는 게 좋겠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비서실장이 직접 브리핑한 데 대해선 "너무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에 중요한 사안"이라며 "비서실장이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대통령 뜻을 제일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까지 포함해 취임 후 네 차례, 총 8건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됐다.
역대 거부권 사례는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이 45회로 가장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7회, 노무현 전 대통령은 6회, 이명박 전 대통령은 1회, 박근혜 전 대통령은 2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