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시공능력평가 16위인 태영건설이 기업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을 신청한 가운데 중소 건설업체들로 유동성 위기가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이번 사태가 건설업 전반에 대한 위기로 확대되기보다는 대형건설사보다는 중소건설사, 그 중에서도 상업용, 지방사업이 많은 업체가 태영건설 사태의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도 건설사, 3년 연속 느는데 태영건설까지…'돈맥경화' 심화 우려
지난달 28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3일 채권자 설명회를 진행한 가운데 건설업계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등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워크아웃이 진행되기 위해선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라 채권단 75%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날 설명회에서 공유된 태영건설의 자구안을 검토한 채권단은 오는 11일 제1차 채권자협의회를 열고 워크아웃 개시 여부 등을 결정할 방침인데 업계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등을 주목하고 있다.
업계는 안 그래도 금리 급등과 고금리 지속, 원자재 가격 및 노임 급등에 따른 공사비 증가로 사업성이 악화됐고,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유동성 악화 등 '다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시공능력 16위 건설사의 워크아웃까지 더해지면서 중소건설사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도 수익성 악화로 현금 흐름이 저하된 상황에서 일부 대형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설사는 회사채 발행 등 직업 금융시장 내 자금 조달이 쉽지않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건설사 회사채 수요예측결과 현대건설과 GS건설, SK에코플랜트 등 대형사들은 수요가 예측치를 상회했지만 신세계건설과 KCC건설, 한양 등은 미달해 산업은행이 이를 인수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을 수치화한 자금조달지수를 봐도 지난해 12월 관련 지수는 71.6으로 전월(65.5)보다 호전됐지만 여전히 기준선(1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산연은 "신용도가 높은 대형건설사 위주로 자금조달 애로 사항이 차츰 개선되고 있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전했다.
태영건설 이후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설사들 역시 중소사들이다. 코오롱글로벌과 신세계건설 등이 PF 우발채무가 현실화할 경우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신세계건설에 대해 "공사원가 부담과 미분양 관련 손실로 인한 실적 악화, 재무부담 가중 등 고려하여 2023년 11월 무보증사채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했다"며 "주요 주택사업장의 분양실적 및 원가율 추이, 대구 등 미분양사업장의 공사비 회수 규모, 예정사업의 사업성 및 분양리스크 통제 수준 등에 대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코오롱글로벌에 대해 "2023년 8월 말 기준 미착공 PF 우발채무 규모가 6121억 원에 이르고 보유 현금성 자산은 2377억 원에 불과해 PF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자체 현금을 통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관측했다.
우발채무는 확정되지 않은 빚을 의미하는데 부동산 PF와 관련된 우발채무는 대개 건설사가 시행사의 대출을 지급 보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악화된 경기의 영향으로 부동산 PF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시행사가 금융사에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지급 보증을 한 건설사가 이 돈을 대신 갚아야 한다. 시장이 좋을 땐 건설사가 기존 PF 대출 재권을 담보로 어음을 발행해 기존 어음을 상환하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태영건설 같은 업체까지 워크아웃을 신청한 마당에 그보다 작은 규모의 건설사에 돈을 빌려줄 때 금융권에서 보다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건설사 도산은 지난해부터 상당 부분 진행되는 모양새다. 건설산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부도 건설사는 21곳으로 2021년 12곳, 2022년 14곳 이후 3년째 늘고 있다. 자진 폐업도 급증세다.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종합 건설사 폐업 신고는 3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14건)보다 71% 증가했다.
PF는 다 문제? 태영건설처럼 '미착공·상업용·지방'사업 많으면 불안
PF 규모에 따른 위험성은 현존하지만 모든 건설사가 PF발 리스크에 노출된 것은 아니란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PF 보증 규모가 상당하다고 해도 국내주택사업 대비 비주택사업, 해외사업비중이 높은 건설사나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탄탄탄한 대형 건설사와 미착공, 상업용 부동산, 지방 사업이 많은 중소형 건설사들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도급사업 PF보증 세부 구성을 보면 미착공 물량(1조원) 중 수도권의 준주거와 상업용 부동산, 지방의 아파트가 70%(7천억원)를 차지한다.
신용평가기관들도 PF보증 중 미착공, 상업용 부동산·오피스텔 같은 준주거시설, 지방에 쏠림 현상을 보이는 건설사들이 불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미착공', '상업용 부동산', '지방'을 부동산 PF의 뇌관으로 꼽았다. 다만 같은 미착공 현장이라도 해도 서울과 인천 경기의 아파트 현장은 PF보증 현실화 위험이 적지만 지방 준주거 현장은 위험한 것으로 분석됐고, 착공 현장이라도 해도 분양률이 75% 미만이라면 위험한 것으로 한신평은 보고 있다.
한신평은 지난해 12월 "건설사 PF보증 중 약 70%가 미착공 사업장 관련 금액"이라며 "미착공사업장 중에 상대적으로 분양 경기 저하 수준이 높은 준주거시설과 기타 비중이 48%"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66%, 지방이 34%이지만 현대건설의 미착공 물량을 제외하면 지방 비중이 51%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향후 금융기관들이 건설사에 대해 더욱 보수적인 방침을 취할 수 있겠지만 태영건설 사태를 건설업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며 "지난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까지 활황이었던 시장 상황에서 과도하게 사업을 확대하거나 리스크 관리를 충분히 하지 못한 기업들이 겪는 경영 상의 난관은 그렇지 않은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클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업계의 분석도 비슷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때 국내 100대 건설사 중 절반이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워크아웃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을 받은 건설사도 40여 곳에 달할 만큼 업계의 타격이 컸지만, 당시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많은 건설사들이 사업 다각화와 유동성 관리 등을 해왔다"며 "최근 사태와 관련해서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겠지만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옥석 가리기'를 통해 진짜 살릴 곳은 살리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해서 리스크에 타격을 받은 업체들은 정리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리먼사태를 경험했고 견뎠던 건설사들은 최근 기준금리 및 원자재 가격 급등 상황을 보면서 수도권, 정비 사업 등을 중심으로 신규 사업을 보수적으로 진행해왔기 때문에 대형 건설사들은 유동성에 대한 어려움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