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이순신 파고든 10년 매듭 김한민 "천행이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 그리고 '노량: 죽음의 바다'(2023)까지 장장 10년에 걸친 대장정, 이른바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오롯이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만 보며 달려 온 길 끝에 선 김한민 감독은 꿈에서 단 한 번도 이순신 장군을 만나 뵌 적 없다며 "이순신 장군에게도 거슬림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거슬린 게 있었으면 호통 치고 나왔을 텐데, 그런 지점을 나름 위안으로 삼는다"며 웃었다.
 
명량해전, 한산해전, 노량해전이라는 세 해전을 통해 김한민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7년 전쟁을 어떻게 '올바르게' 종결하고자 했는가다. 이를 위해 10년을 달려오며 그 역시 올바르게 3부작을 종결짓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다.
 
김 감독은 세 편의 작품을 통해 이순신 장군을 다루면서 극중 이순신을 한 명의 배우만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명량'에서는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박해일 그리고 '노량'에서는 김윤석에게 이순신 역을 맡겼다.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시도였다. 이는 한산해전에서 '지장'(智將·지혜로운 장수), 명량해전에서 '용장'(勇將·용맹한 장수), 노량해전에서 '현장'(賢將·현명한 장수)의 이순신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 이순신에 걸맞은 배우를 찾았고, 그 결과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순신'이라는 영웅이자 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10년 만에 이런 날이 왔구나 싶다"며 인터뷰의 포문을 연 김한민 감독에게 10년 대장정의 소회와 마지막 여정 '노량'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한민 감독에게 이순신 장군과 '노량'이 가진 의미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 온 이순신 장군을 위해 김한민 감독은 10년이라는 시간을 바쳤다. 그사이 김 감독은 '전문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파고든 연출자가 됐다.
 
"임진왜란은 한마디로 처참했지만, 지루한 전쟁이었어요. 7년을 끌었으니 얼마나 처참했겠어요. 그 중심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죠. 이순신 장군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위대한 면모가 많이 드러나는 거 같아요. 우리가 '영웅'을 넘어 '성웅'(聖雄·거룩한 영웅)이라 표현하지만, 성웅을 넘어서 굉장한 혜안을 갖고 있던 분이에요. 어떻게 보면 현장(賢將)의 느낌 강하게 있었던 분이죠."
 
그런 점에서 이순신 장군을 누가 연기할지는 '이순신 3부작'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용기로 바꿔 가는 이순신으로서는 최민식이, 지략을 갖추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장으로서는 박해일이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임진왜란을 올바르게 종결할 현명한 장수에는 김윤석만한 배우가 없었다.
 
그는 "'노량'에서의 이순신은 용장과 지장의 면모 다 갖춘 모습을 보여준다. 지혜로우면서도 혜안이 있는 느낌으로 '현장'(賢將)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김윤석이 그런 아우라를 가진 귀하고 좋은 배우였다"고 이야기했다.
 
영화 '명량'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속 이순신 장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 감독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량'의 중심엔 '현명한 장군'이란 키워드가 있다.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노량'이 중요한 건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하지만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을 올바르게 종결하고자 하는 결의가 담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 감독은 "왜 그렇게 치열하고 집요하게 마지막 전쟁을 하려 했는가에 대한 나름의 확신에 찬 결론에 도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지점에서 '노량' 속 이순신 장군은 전사(戰死·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음)하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 말하지 말라"라는 말 뒤에 "절대 이렇게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김 감독은 "추가적으로 던지는 장군의 말이야말로 이순신 장군이 살아계신다 해도 그분에게 부끄럽지 않고, 그분의 대의나 유지를 거스르지 않는 마지막 대사라고 내 나름의 확신이 있다"며 "그런 지점에서 '노량'을 만들 결심을 더 강하게 했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노량해전이라는 100분에 가까운 해전을 설계해야 할지가 보였다"고 말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한민 감독은 왜 '사운드'가 가장 어렵다고 했을까

 
임진왜란은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지난한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다. 조선과 왜 그리고 명나라까지 합류해 1천여 척의 배가 출정한 해전이다. 영화에서는 100분간 해상 전투가 이뤄진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세트장 내 실제 판옥선 크기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실제 비율의 판옥선과 안택선 2~3척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초대형 실내 세트를 조성하고, VFX(시각특수효과)로 마무리해 노량해전을 생생하게 구현해 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중 김 감독을 가장 괴롭혔던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사운드'였다. 치열한 전장의 중심에 선 이순신 장군 그리고 그가 왜 노량해전을 준비했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다. "시간과 돈이 얼마나 들건 꼭 완성해 보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었는데, 의외의 복병은 사운드 작업이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한민 감독은 "긴장감이 살면서도 정서를 자극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롱테이크로 연출했는데, 신시사이저(소리를 전자적으로 발생시키고 변경시키는 전자 악기) 계열의 사운드가 맞을 거 같다고 해서 넣었지만 느낌이 잘 안 살았다. '이거 큰일이다' '내가 연출을 잘못했나 보다'라는 결론에 이를 지경이었다"며 "그래서 일출을 기점으로 과감하게 신디사이저를 끊고 뮤트(무음)로 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이순신이 등장한 것처럼 최소한의 사운드만 가져가는 방향으로 답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시간짜리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지휘자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지휘에 따라서 이 영화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많이 달라졌다. 결국 완급조절에 있어서 과감한 결정이 필요했다"며 "상업영화에서 이렇게(뮤트) 해도 되냐고, 너무 실험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처절한 전장에 서 있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말 천행이었다"

 
처음 '명량'을 제작할 당시 누군가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명량'은 결국 1700만 명이 넘는 관객(총 관객 수 1761만 6299명)을 동원하며 10년 넘게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내주지 않고 있다. '명량'을 동력 삼아, 그리고 '명량'에서의 도전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산' '노량'에 이르는 '이순신 3부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김한민 감독은 10년 대장정의 최종 목표야말로 "이순신 장군을 널리 잘 알리고,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지금 우리 시대에 소중하게 상기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역사를 봐도 아직 분단 상태고, 여러 문제가 종결되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그런 지점에서 관객분들이 크게 공감하고 의미 있게 보지 않을까 싶어요."
 
10년을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바쳤음에도 김한민 감독의 다음 행보 역시 '임진왜란'이다. 드라마 '7년 전쟁'(총 8부 예정)을 통해 또 다른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이순신 3부작'을 하다 보니 임진왜란 7년을 안 들여다볼 수 없었다. 정치·외교사적 지점에서 강렬하게 흥미를 끄는 지점이 있어서 꼭 하고 싶다. '7년 전쟁'은 한음 이덕형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영웅이자 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을 뚝심 있게 짚으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역시 '이순신 3부작' 속 이순신처럼 용기를 내 '명량'이란 첫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성공을 발판 삼아 보다 지혜롭게 '한산'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이 모여 '노량'이라는 올바른 결말을 현명하게 만들어냈다. 그런 자신을 향해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정말 천행이었다."
 
[10년 프로젝트 '이순신 3부작'에 뛰어든 사람들 <하> 제작자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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