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태영그룹이 계열사 매각자금을 태영건설에 온전히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 노력 자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금융당국에서조차 채권단에 강도 높은 정상화 의지를 보여야 할 태영건설 측이 오히려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는 시각이 감지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절차 초반부터 먹구름이 낀 모양새다. 3일 예정된 태영건설의 채권단 대상 설명회에서 오너 일가의 대규모 사재 출연 등 고강도 자구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 같은 배경과 맞물려 제기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당일인 지난달 28일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 태영건설에 자금운용 안정성 확보 목적으로 이튿날부터 1년 동안 1133억 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이 대여금은 티와이홀딩스가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해 마련한 자금에서 나왔다. 앞서 티와이홀딩스 측은 이 매각 자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이런 자구 방안을 실행했다고 시장에 공표한 셈이다. 태영그룹의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규모는 2400억 원으로, 40% 지분을 보유했던 티와이홀딩스 몫은 960억원이며, 나머지 60% 지분을 보유했던 오너 일가 몫은 1440억 원이다.
그러나 실제론 이런 대여 결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논란이 2일 불거지자 티와이홀딩스는 금전대여 결정 공시 후 1133억 원 가운데 400억 원만 우선 빌려줬다고 해명 공시를 내놨다. 실제 계약 내용은 '대여 한도'가 1133억 원이며 태영건설이 필요한 금액을 요청할 경우 그에 맞춰 실행하는 것으로 돼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게 해명의 골자로서, "나머지 733억 원도 태영건설의 필요 상황에 따라 (대여) 실행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에 따른 시장 안정 조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금융당국에서조차 "사실상 처음으로 제시했던 자구 방안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노력할 테니 워크아웃을 도와 달라'는 태영 측의 메시지가 채권단에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 의문"이라는 쓴소리가 나왔다.
'1133억 원 대여' 내용을 담은 최초 공시가 문자 그대로 지켜지지 않아 공시 관련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됐다. 티와이홀딩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초 공시에 세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공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는 건 잘못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일부 채권자는 "사안이 중대함에도 설명의 정밀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 원도 갚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이 역시 공시된 대여금이 온전히 실행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게 사측 입장이다.
미상환 된 외담대는 태영건설이 협력업체에 외상매출 채권으로 대금을 지불하고, 협력업체는 이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발생한 것이다. 태영건설 측은 티와이홀딩스로부터 받은 대여금 등으로 지난달 29일 만기에 맞춰 협력업체에 직접 해야 할 채무 상환은 마쳤다고 밝혔다. 다만 외담대는 은행에 갚아야 할 빚(금융채권)으로 분류돼 워크아웃 관련 절차 시작과 맞물려 현행법상 상환 유예 대상이 됐기에 당국·채권단과의 소통을 거쳐 미상환이 이뤄진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당국에서도 "외담대 미상환 건은 신뢰 파기의 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태영건설 외담대를 보유한 은행들에게 상환청구권(소구권) 행사를 유예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정부는 이번 사태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태영건설은 대주주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전제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워크아웃을 통한 경영 정상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 워크아웃 개시 여부조차 정해지지 않은 초기 단계에서 '전제 조건'인 자구 노력 의지가 있느냐는 논란부터 벌어진 만큼, 태영건설로선 험로가 예상된다. 3일 산업은행에서 열리는 채권자 상대 첫 설명회에서 태영건설이 어떤 자구안을 내놓을 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 설명회에선 태영건설의 경영 상황과 자구 계획 설명이 이뤄진다. 이후 11일 1차 금융채권자협의회에서 워크아웃 개시 여부와 채권 행사의 유예 기간, 기업 개선 계획 수립을 위한 실사 진행,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 관리 기준 등이 논의, 결정될 예정이다. 금융권에선 "(워크아웃을 위해선) 태영건설 대주주의 책임있는 행동이 당연히 필요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기류 속에서 일각에선 당국이 태영건설 오너 일가에 수천억 원 규모의 사재 출연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당국 관계자는 "만족할 만한 자구책을 고민해서 내야 하는 주체는 태영건설 쪽이지, 정부와 주채권은행이 그 해법을 정해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태영건설 측 관계자는 "사재 출연 실행과 그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