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 추진을 재차 강조했다. 핵심 국정과제였지만 그동안 지지부진했다는 지적을 돌파하고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다만 노동계 반발 등은 여전히 넘어서야 할 과제다. 아울러 집권 3년차 국정 기조는 '민생'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간 강조됐던 '카르텔 타파'도 신년사에서 한층 강도 높게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새해 첫날인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된 '2024년 신년사'를 통해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구조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겠다며 "노동개혁의 출발은 노사법치다. 법을 지키는 노동운동은 확실하게 보장하되, 불법행위는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기본 전제인 '노사법치주의'를 재차 내세운 것이다.
이밖에 직무 내용과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변화, 유연근무 등 다양한 근무 형태 노사 간 합의 선택 추진 등을 약속했다.
핵심 국정과제인 3대 개혁은 그동안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특히 노동개혁은 얼어 붙은 노정 관계로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 지난해 양대 노총 등 노동계는 '노사 법치'를 내세운 정부의 압박에 강대강 대치를 벌였고 노동시간 개편안 논란,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 등에 반발한 바 있다.
집권 3년 차에도 노동계를 향한 엄정 대응 기조는 또 다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최근 한국노총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복귀한 점은 청신호다. 올해 노동개혁의 성패는 정부의 기조와 사회적 대화의 조화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연금개혁 역시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과학적 분석과 여론조사, 심층 인터뷰 등 방대한 데이터를 지난해 10월 말 국회에 제출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제 국민적 합의 도출과 국회의 선택과 결정만 남아 있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지난해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운영계획안은 노후소득 보장 강화, 세대 형평과 국민 신뢰 제고, 재정안정화, 기금운용 개선, 다층노후소득 보장 정립 등 5개 분야 총 15개 과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가장 큰 관심사였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구체적인 수치가 빠졌다는 점은 향후 첨예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야권에선 이를 두고 '맹탕' 개혁안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앞으로 국회의 공론화 과정에도 적극 참여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한 교육개혁에 대해선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과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하겠다"라고 밝혔다. 사교육 부담을 덜고 교권을 바로 세우는 한편 학교폭력 처리 개선, 혁신 대학 과감한 재정 지원 등을 약속했다.
신년사에는 '저출산 문제' 해결도 강조됐다. 윤 대통령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만큼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라며 "저출산의 원인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과잉 경쟁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집권 3년 차 국정 기조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
신년사에서 제시된 전반적인 국정 기조는 '민생'과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다.
대통령실 김수경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올해 신년사는 국민만 바라보는 따뜻한 정부라는 기치 아래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조됐다"며 "국민을 위해 일하는 태도는 따뜻하게, 국민을 위해 일하는 방식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과 직결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도시 내에 주택 공급을 늘리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속도를 높이는 한편 1~2인 가구에 맞는 소형 주택 공급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투자를 가로막는 '킬러 규제' 혁파,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외교', 한미일 3국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튼튼한 안보 및 자유로운 경제 활동 등도 언급됐다.
신년사에서는 국민은 28차례, 경제는 19차례, 개혁은 11차례, 민생은 9차례 등장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 이후 '민생'에 방점을 찍은 국정 기조가 집권 3년 차를 맞아 더욱 힘이 실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첫 공식 일정인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후 대통령실에서 참모진과 조찬을 함께 하며 "올해는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해결하고, 민생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정부 부처별로 받던 신년 업무보고도 '민생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달 중순 신년 기자회견 개최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를 마친 직후 기자실을 찾아 "올해에는 김치찌개도 같이 먹으며 여러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새해 인사를 했다.
민생에 방점을 찍었지만 그동안 강조됐던 '카르텔 타파'도 신년사에서 강도 높게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며 "부패한 패거리 카르텔과 싸우지 않고는 진정 국민을 위한 개혁이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그동안 통상 일부 노조나 시민단체 등을 '이권 카르텔'로 지적했던 점을 감안하면 '패거리'로 개념을 확장해 비판 수위를 높인 것이다. 이를 두고 야권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패거리 카르텔'을 들먹이며 새해에도 국민 갈등과 정쟁을 부추기겠다고 선언했다"고 반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패거리 카르텔과 관련해 "이념에 너무 경도돼서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자신의 이권만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 또한 타파해야 된다, 그런 취지로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