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전쟁'과 '힘'을 말한 남북지도자들…남북관계 험로 예고

신년사하는 윤석열 대통령(왼쪽),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새해 첫날부터 남북의 지도자들이 각각 '힘에 의한 평화'와 '무력충돌'을 언급함에 따라 2024년 새해 남북관계도 험로가 예상된다. 특히 북한은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예고하며 기존의 통일 노선에 대한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한국) 전 영토를 평정'한다는 위협도 내놓았다.

그나마 안전핀 역할을 하던 9.19 군사합의도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맞대응한 우리의 '효력 정지'와 북한의 '파기 선언'으로 무력화되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된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한국형 3축 체계를 강력히 구축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겠다"며 "대한민국은 상대의 선의에 의존하는 굴종적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확고히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원천 봉쇄할 것"이라며 "튼튼한 안보로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걱정 없는 일상을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직접적으로 '무력충돌'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주요 지휘관들을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만나 "적들의 무모한 도발 책동으로 하여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당 전원회의가 우리 혁명무력 앞에 제시한 전투적 과업들을 철저히 집행 관철해 나갈 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고 1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우리 군대는 견결한 대적의식과 투철한 주적관을 지니고 적들의 그 어떤 형태의 도발도 가차없이 짓부셔버려야 하며 만약 놈들이 반공화국(반북한)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고 불집을 일으킨다면 순간의 주저도 없이 초강력적인 모든 수단과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섬멸적 타격을 가하고 철저히 괴멸시켜야 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수위가 높다는 점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다. 본래 북한은 내부 결속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표현과 단어 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해 첫날인 1월 1일 보도에서 직접적으로 '무력충돌'을 언급한 것은 심상찮은 일이다.

바로 전날 보도된 당 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 내용에서도 심각한 내용이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보고에서 지난해 한미 핵협의그룹(NCG) 2차 회의 개최, 이 회의에서 결정된 올해 8월 UFS 한미연합훈련에서의 핵 작전 시나리오 연습 계획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올해에 미 군부 깡패들이 일본, 남조선 놈들과 벌려놓은 합동군사연습 회수가 지난해에 비해 무려 2배로 늘어난 사실을 통해서도 미국이 우리 공화국과의 군사대결을 기어코 목적하고 그 준비에 더욱 발악적으로 몰두하고 있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며 "현실은 미국이 고질적으로 남발하고 있는 반공화국 적대행위들이 단순히 수사적 위협이나 과시성 목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져 쌍방 무력간 충돌을 유발시킬 수 있는 범행 단계로 명백히 진화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말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 연합뉴스

여기서 김정은이 언급한 '우리의 조국통일노선'은 지난 1980년 김일성이 제의한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 이보다 조건을 완화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 등을 의미하는데, 이것도 폐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는 이른바 '선대의 유훈', 즉 김일성·김정일이 당부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은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대남대적부문의 기구들을 폐지 및 정리"하라고 언급한 데 대해 최선희 외무상이 리선권 통일전선부장을 비롯한 해당 관계부문 일군(간부)들과 협의회를 진행했다고 1일 보도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2국가제'를 위한 실무 협의에 들어간 셈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이미 준비되고 예고된 정책 방향이긴 하지만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사실상 선대의 통일정책 유훈까지 포기하는 선언을 한 점은 남북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파탄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단순히 '통일 포기' 선언에서 끝나지 않는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전통적인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논리는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하자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는데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고 대남·대미 실전배치와 작전화가 이뤄지면서 이 논리와 모순이 발생한다"며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자기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남북간 통일 논의를 포기하고 외교관계 없는 적대적 교전국가로 정리할 경우 모순이 제거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은 주저 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기 위한 준비를 예견성 있게 강구해 나갈 데 대한 중요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노동신문은 보도했다.

이는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과도 다른 점이 있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당 규약이 헌법보다 우선하는데, 개정된 규약은 기존에 있던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데 있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남한을 '혁명 대상'으로 명시한 내용이 빠졌으므로, 북한이 수십년간 지켜 온 '혁명통일론'을 포기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8차 당 대회에서는 무력통일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기존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 방안을 유지한다는 측면으로 볼 수 있었다"면서도 "북한은 항상 최신의 언급을 중시한다. 전원회의에서의 '적대적 국가 관계'라는 메시지 측면에서 봤을 때는 혹시 우리 측에서 북한 정권을 종말시키려 하면 무력으로 통일도 할 수 있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이 강경 노선을 펼 경우 우리도 '힘'으로 맞대응할 뜻을 밝혔으므로, 2024년 남북관계 전망은 매우 어둡다고 볼 수 있다.

임을출 교수는 "2024년에는 각종 군사훈련과 전략자산의 상시적 배치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예정돼 있고, 북한은 그 때마다 초강경 경고성 대응조치를 내놓을 것"이라며 "물론 그때마다 북한의 전략, 전술무기들은 보다 향상된 성능과 위협수준을 과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해 벽두부터 암울한 한반도 전쟁위기 관리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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