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미호칭도 통미봉남…'남조선 놈들과 미국'

北, 남북은 더 이상 '동족'아닌 '적대적 2국가' 규정
호칭에도 드러난 적대의식…각종 대남 '멸칭' 사용
美에 대해서는 '미제' '반미' 표현 없이 그냥 '미국' 호칭
김정은 첫 언급 "남조선 영토평정 위한 대사변 준비" 촉구
통일부 "최고지도자 직접 언급으로 올해 과시성 도발 가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정천 복귀는 재래식 도발 예고"
통일연구원 "'민족'과 '통일' 포기로 대남 핵사용 정당성 확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연설 후 박수치는 참석자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30일 종료된 연말전원회의 결론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해야할 현실적 요구'에 따라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전환'노선, '대적사업에서의 단호한 정책전환' 노선을 밝혔다고 했다. 
 
북한은 이런 적대의식을 한·미·일에 대한 호칭을 통해서도 전략적으로 드러냈다. 수시로 '남조선 놈들', '일본 놈들', '일본, 남조선 놈들'이라고 하면서도 미국은 그냥 '미국'이었다. 연말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반제' '대미대적투쟁' '등의 말은 썼지만 평소와 달리 '미제', '반미'라는 표현은 없었다. 
 
한국에 대해서는 '남조선 놈들' 5회, '남조선 것들' 4회, '대한민국 것들' 1회, 졸개, 충견, 특등주구 등의 각종 멸칭이 쓰였으나, 미국에 대해서는 '미국 놈들' 1회, '미 군부깡패'가 1회였고 16회에 걸쳐 '미국'이라고 호칭했다. 
 
한미를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윤석열 괴뢰정권' '윤석열 괴뢰패당'이라고 했으나, 미국은 '미국 대통령'이라며 외교적 선을 넘지 않았다. 
 
이런 양면적 행태에는 올해 미국 대선 등을 두루 감안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정은에게 "지금 남조선이라는 것은 정치는 완전히 실종되고 사회전반이 양키문화에 혼탁되었으며 국방과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에 불과"했다. 
 
김정은은 책임을 남한에 전가했다. "지금까지 괴뢰 정권이 10여차나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기조는 추호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져왔다"며,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으니,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설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은 남북을 민족·동족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두 교전국의 관계'로 인식하는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만일의 경우'라고는 했지만, "유사 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김정은이 직접 남한을 상대로 무력통일을 의미하는 '영토완정'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한에 대한 다양한 멸칭, '동족'이 아닌 '적대적 2국가' 규정으로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끌어올리고, 유사시 핵전쟁과 '남조선 영토 평정'을 위한 준비 촉구 등으로 피 포위 의식을 자극해 내부 충성과 단결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최고지도자가 직접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 사변 준비'를 언급한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올해 과시성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포병사령관 출신 박정천의 당 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복귀는 대남 재래식 도발 준비를 예고한다"며, "DMZ 주변 국지 도발, 드론 공격, 사이버 테러 등 기습적이고 돌발적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통일연구원은 "수사적인 차원의 '민족'과 '통일논의'를 포기하고 적대적 교전국가로 남북관계를 정리해 핵무기 대남 사용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무력 통일 위협을 가시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이번 회의에서 '대남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 노선의 일환으로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기구들을 정리 개편할 방침을 밝혔다. 
 
통일전선부는 민족내부의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각종사업, 남북대화·교류·접촉 등을 관장해왔는데, 적대적 2국가체제 규정에 따라 이런 기구들을 없앤다면 구색을 맞추는 차원에서라도 이제 통일방안을 언급하며 민족내부협력을 논의하는 일도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기본이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적대적 2국가' 체제라고 한다면 교류협력을 통한 통일방안 논의와는 모순되고, 따라서 통일논의를 중단한 채 남북이 2국가로 적대적 공존을 하거나, 김정은이 말한대로 '유사 시 남조선 영토 평정'과 같은 위협 발언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남한에 대해서는 이처럼 교류협력을 끊고 군사적 위협과 압박을 강화하는 대신 미국에 대해서는 핵· 미사일 고도화의 지속적인 추진을 통해 핵 군축 협상의 문턱을 높이는 '통미봉남'의 양면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한미 워싱턴선언, NCG 회의가동을 통한 한미 핵 협의, 미국 핵 전략자산의 전개 등을 언급하며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강 대 강, 정면 승부의 대미 대적투쟁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정책을 실시해야 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발언이다.
 
김정은은 내년에도 지속적인 핵무기 생산과 발전을 추진할 계획을 밝히면서 3개 정찰위성 추가 발사, 선박공업, 무인항공공업, 탐지전자전, 민방위무력 부문 등 8개 분야의 과업을 언급했다.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계획을 밝힌 셈인데 올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 전개될 수도 있는 협상 국면에도 대비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북한이 추구하는 협상은 '비핵화 대화'가 아니라 핵보유국 인정과 유엔 제재 완화 등을 수반하는 핵 군축 협상일 것이다. 미국에 대한 표현의 수위조절이 필요한 이유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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