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가 8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의사 793명(한의사·치과의사 포함)이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됐다.
'강간·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가 689명(86.9%)으로 가장 많았고 '카메라 등 이용 촬영(불법촬영)' 80명(10.1%),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 19건(2.4%),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5명(0.6%) 순이었다.
연도별로 2018년 163명, 2019년 147명, 2020년 155명, 2021년 168명, 2022년 160명으로 연간 평균 159명꼴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성형외과 전직 원장 40대 의사 염모씨는 지난 8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에게 치료 목적 외의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처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환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줬다.
경찰은 염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작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마취 상태인 여성 환자 10여명을 불법 촬영하고 일부 환자는 성폭행한 정황을 포착했다.
올해 초에는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2021년부터 전공의와 간호사 등 10여명을 상습 성추행 또는 성희롱한 혐의가 드러났다.
해당 교수는 5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고 지난 9월 복직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도 법을 개정해 '철옹성 면허'라 비판받던 의료인 면허 규제를 대폭 손질했다.
지난 11월 시행된 개정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이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의료인 결격 사유가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및 선고유예 포함, 고의성 없는 의료사고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제외)을 받은 경우'로 확대된 것이다.
기존에는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만 취소할 수 있었다.
대신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했을 때 자격정지를 할 수 있게만 규정돼 있었는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성범죄를 사유로 자격이 정지된 사례는 4명에 불과했고 처분 역시 자격정지 1개월에 그쳤다.
다만 의료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게 실효성 있는 처벌이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현정 조선대 법학과 초빙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환자가 성범죄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과 의사·환자 간 신뢰가 악용될 수 있다는 점, 증거 수집이나 증명이 어려운 점을 의료인 성범죄 사건의 위험 요소로 꼽았다.
형사사법기관에서도 의학적 지식 부족으로 의료 행위와 범죄 행위의 경계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입증에 어려움이 있고 의료 업무의 특수성으로 정상 참작이 적용돼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작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포괄적으로 개정된 규정이 강력한 제재로 효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의료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법률적 제재 규정과 의료 전문기관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