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등 민영화 이후 특정한 오너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에서 차기 대표 선출을 놓고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소유분산기업들은 나름의 자구책을 통해 투명한 절차를 거쳐 대표를 선출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연임에 나서는 대표들이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되는 규칙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으며, 공정성 확보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포스코홀딩스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는 29일 입장문을 통해 "지난 19일 발표한 신 지배구조 규정에 정한 기준에 따라 독립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차기 회장 심사 절차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며 "현 회장 지원 여부에 전혀 관계없이 오직 포스코의 미래와 주주 이익을 위해 어느 누구에게도 편향없이 냉정하고 엄중하게 심사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기 회장으로 선임된다면 역대 첫 3연임을 하게 되는 최정우 현 회장에 대해서는 "만약 (최정우) 현 회장이 3연임을 위해 지원한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언급했다.
이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포스코 후추위가 발표한 차기 회장 선출 절차 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김 이사장은 전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 포스코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은 공정하지 않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 포스코홀딩스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후추위를 가동하고 후보군 선정에 나선 상태다. 후추위는 다음달 말에 '숏리스트(사장 후보 심사 대상자 명단)' 후보군을 압축하고, 2월쯤에 최종 후보 명단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크게 2가지 이유를 거론하고 있다.
먼저, 연임 의사 표명 여부와 관계 없이 최 회장이 자동적으로 후보군에 오르게 된 점이다. 포스코는 그동안 현직 회장이 연임 의사를 표명한다면 경쟁 없이 단독 심사 기회를 부여하고, 후추위에서 적격 판정을 받을 시 주주총회 의결을 밟는 절차를 따라왔다.
이러한 규칙이 현직 회장의 '셀프 연임'을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자,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19일 이사회에서 현직 회장 우선 심사제를 폐지했다. 동시에 현직 회장의 연임 의사 표명 여부와 관계 없이 자동적으로 회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게 했다.
최 회장도 다른 후보군과 같은 입장에서 후추위의 평가를 받게된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관 개정이 최 회장의 자연스러운 3연임 시도에 길을 터줬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역대 최초 3연임 도전'을 공식화하는 부담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고, 후보군에 자천·타천·추천위 자체 결정 등 어떤 방식으로 오르게 됐는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아울러, CEO후보추천위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들이 최 회장 재임 중 선임됐거나 연임됐다는 점도 문제제기의 대상이다. 최 회장 재임 시기 임명된 인사들로 후추위가 구성된 만큼, 이들이 최 회장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후보군을 압축하는 과정에서도 후추위는 외부 저명인사로 구성된 인선 자문단의 자문을 받기로 했는데, 자문단의 구성은 비밀에 부쳐져 있다. 이들의 구성 역시 현 경영진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최정우 현 회장은 공식적으로 3연임 도전 여부에 대한 생각을 밝히지 않고 침묵 중이지만, 침묵이 곧 도전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후추위는 "과정을 수시로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며 우려 불식에 나섰지만, 지분 6%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 국민연금의 공개 지적으로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비슷한 상황은 KT&G의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연출된다. 민영화 과정을 거쳐 소유분산기업인 KT&G도 전날 차기 사장 선임 절차를 가동했다.
포스코처럼 후보군을 결정하는 지배구조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했다. 백복인 현 사장의 임기 내에 임명된 이사들이다.
또 KT&G는 사외 사장 후보군을 공개 모집한다는 점에서 포스코와는 차이가 있지만, 사내 사장 후보군에 현직 사장이 자동으로 포함된다는 점도 유사하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을 꾸려 자문을 받는 절차도 갖췄지만, 이들의 명단 역시 공개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KT&G 주주인 한 행동주의펀드에서는 "사외이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백복인 현 사장은 내년 3월 연임에 성공한다면 최초 4연임을 달성하게 되는데, 아직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4연임 도전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주인 없는 회사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숱한 압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기에 독립적인 사장 선임 절차가 확립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기존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연임에 유리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는 의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에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