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집에 가야하는데…"
지난 21일 오후 10시 반,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한 홀덤펍을 방문한 20대 초반 남성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 곧이어 다음 게임에 참여했다. 쌓여있던 그의 칩은 30분 뒤 모두 사라졌다. 약 4만원 상당의 홀덤 '바인권(게임 참가비)'이 단 30분 만에 소진된 것이다. 함께 게임을 하던 강모(21)씨는 "홀덤펍에 이런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며 "초보자들은 겁 없이 들어왔다가 돈을 잃기 쉽다"고 귀띔했다.
홀덤펍, 환전 없어 합법이지만…도박 중독성은 그대로?
최근 들어 대학가 일대에도 홀덤펍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홀덤펍의 인기를 반영하듯 기자가 방문한 광진구 대학가의 홀덤펍도 인근에 거주하거나 수업이 끝난 후 방문한 대학생들로 금세 만석이 됐다.
홀덤펍은 카드게임 '홀덤(hold'em)'과 술집을 뜻하는 '펍(pub)'의 합성어로 입장료만 내면 카드 게임과 음주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보통 보드게임 업소나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아 카드게임 테이블을 설치해 운영한다.
현재 홀덤펍은 합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홀덤 게임에서 1등을 차지해도 상금을 현금이 아닌 바인권으로 교환받는 등 직접적인 금전거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게임을 통해 보상으로 받은 바인권으로 맥주, 간식을 사먹거나 많게는 여섯 판의 홀덤 게임을 추가로 할 수 있다. 사실상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바인권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라 강한 중독성을 띨 수 밖에 없다.
홀덤에 빠져들어 한때 주 3회씩 홀덤펍을 찾았다는 김모(20)씨도 "홀덤 게임에서 이겼을 때 받는 상품을 얻지 못할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 스스로를 보며 (홀덤펍에) 중독됐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대학생 임모(23)씨도 "홀덤 게임에서 1등을 했을 때 희열에서 오는 중독성이 강하다"고 밝혔다.
하루 10만원에 가까운 소비를 유도하는 시스템으로 홀덤펍에서 많은 돈을 소비하는 대학생도 적지 않다. 게임을 하고 싶을 때마다 2만원 상당의 바인권을 1장씩 구매했던 김모씨도 "10만원을 한 번에 지불하면 추가로 바인권 한 장을 주는 혜택을 받기 위해 10만원을 결제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졌다"며 "하루에 10만원치 바인권을 모두 소진할 때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앞에선 대회 준비, 뒤로는 현금 거래…사실상 단속 어려워
최근에는 홀덤 게임에 대한 보상을 실제 현금으로 교환하는 불법 홀덤펍, 이른바 '캐시펍'도 암암리에 영업을 하고 있다.
21일 밤 11시 경 CBS노컷뉴스가 찾은 광진구 소재 A 홀덤펍은 외관상으로 일반 홀덤펍과 다를 것이 없었다. 위치도 사람들이 지나가다 쉽게 볼 수 있는 큰 대로변에 있고, 건물 외부에도 홀덤펍임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있을 정도로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홀덤펍이 위치한 건물 2층으로 올라갔지만, 홀덤펍의 문 역시 상호 등으로 가려져 있어 열기 전까지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였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니 10명 가까운 인원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홀덤을 즐기고 있었다. 곧이어 직원이 "어떤 홀덤을 치러 왔냐"고 물었다.
기자가 "홀덤을 많이 쳐보지 않아 잘 모른다"고 답하자 직원은 "현재 바인권 금액이 30만원"이라고 말했다. 일반 홀덤펍의 1회 바인권 가격이 2~3만원인 것을 고려했을 때 10~15배가량 높은 금액이었다.
높은 바인권 금액 뿐만이 아니었다. 높은 가격이 형성된 이유에 대해 직원은 "지금은 홀덤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시드권을 걸고 치고 있어 평소보다 금액이 크다"면서 "큰 거 원하시는 분들 있을 때는 상금도 세진다"고 말했다.
이에 상금이라면 현금 교환을 의미하는 지 묻자 직원은 "현금으로 교환해주진 않는다"며 초보자라면 다른 날에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드권을 팔아 현금화하는 게 어렵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도박과 큰 차이가 없다.
부산에서 홀덤펍을 운영했다는 박모(43)씨는 "현금 환전에 보통 편법을 사용한다"며 "홀덤 게임 승자에게 상품으로 시드권을 주는 식으로 모양만 갖추고 뒤에서 시드권으로 금전적 거래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드권 거래에 대해 "시드권 판매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시드권을 손님에게 주고, 해당 시드권을 아는 지인에게 팔아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시드권을 중고장터나 거래 사이트에 게시하면 판매 업주 혹은 지인이 직접 사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실제로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플랫폼에는 다수의 시드권이 매물로 올라와 있다.
한편 현재 A 홀덤펍을 관할하고 있는 지역 보건소에 문의한 결과. 해당 홀덤펍은 단속에 적발된 적 없이 정상운영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홀덤펍을 관할하는 광진구보건소 관계자는 "A 홀덤펍이 불법적인 현금 교환 등으로 단속에 적발된 적은 없다"면서 "홀덤펍의 불법 영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홀덤에 사용된 칩(chip)이 돈으로 환전됐다는 명백한 증거가 필요해 캐시펍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홀덤펍 10곳 중 7곳 캐시펍"…대학생도 예외 아냐
시중에서 영업하는 상당수의 홀덤펍이 사실상 캐시펍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 홀덤펍 업주 박씨는 "정확한 통계는 없겠지만, 홀덤펍 중 약 70% 이상은 캐시펍일 것으로 본다"며 "합법적인 홀덤펍을 운영하던 주변 업주 중에서도 캐시펍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홀덤에 빠진 고객들이 홀덤 게임에 대한 보상으로 점점 상품이 아닌 현금을 원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홀덤펍 시장의 방향이 캐시펍으로 향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홀덤펍을 운영하는 업주 서모(26)씨도 "많은 홀덤펍들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캐시펍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홀덤펍을 찾던 일부 대학생들 역시 캐시펍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서씨는 "(운영하는 점포를 찾는) 고객의 절반이 인근 지역 대학생"이라며 "합법 홀덤펍에서 홀덤의 재미를 느낀 일부 고객들이 캐시펍으로 넘어가는데, 그 중엔 대학생도 일부 있다"고 전했다.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홀덤펍과 캐시펍이 겉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홀덤을 즐기기 위해 홀덤펍을 찾았던 사람들이 실수로 캐시펍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정모(19)씨는 "홀덤펍과 캐시펍을 외관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워 자칫 실수로라도 캐시펍에 들어갈까봐 원래 가던 홀덤펍 외에 다른 홀덤펍을 방문하기 꺼려진다"며 "캐시펍같은 불법 업소들로 인해 합법적인 홀덤펍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홀덤펍 업주 서씨는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창문을 설치해 놓은 합법적인 홀덤펍과 달리 캐시펍들은 창문을 모두 가려놓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최대 수백억원 규모의 캐시펍 도박 사례들이 잇따라 적발되면서 지난 7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8월부터 12월 말까지 '홀덤펍 집중 단속 기간'으로 지정하고, 전국의 홀덤펍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불법 도박판을 벌인 홀덤펍을 신고하거나 제보한 데 따른 검거보상금 역시 50만원에서 최대 500만원으로 대폭 늘렸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홀덤펍 집중 단속 결과는 내년 1월에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