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인도 빈민 여성의 대모 ''''변상이''''


2004년 1월 21일 CBS뉴스레이다 4부 대담

인도빈민 여성의 대모 변상이씨

CBS뉴스레이다에서는 구정 연휴기간동안 "세계 속에서 한국의 혼을 심고있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을 릴레이 인터뷰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인도 콜카타 빈민지역에서 15년동안 현지 빈민여성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인도 빈민여성의 대모로 자리매김한 변상이씨를 연결해 얘기를 나눠보겠다.

변상이씨는 인도에서 탁아소운영과 의료봉사등을 통해 빈민가 지역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변상이선생님 나와 계십니까?

- 지금 선교사로 인도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잠깐 안식년을 맞아서 미국에 머물고 계시다구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 지금 버지니아 린치버그에 있다.

- 변 선생님께서는 인도 콜카타의 휠따라는 빈민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곳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 저희가 사역하는 지역은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인데,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과 목사님들을 통해서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고 문맹률이 60% 이상인 인도에서 문맹 퇴치운동을 아울러 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활동 지역은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한달에 두 번씩 무료로 치료해주는 진료소도 운영중이고, 또 가난한 집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초등학교도 운영중이다.

- 어떻게 해서 처음에 그곳으로 가게 되셨습니까?

▷ 이야기하자면 긴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신학교에서 신학을 하다가 인도 목사인데 로이 목사님이라고 그분과 결혼해서... 인도에는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데, 결혼을 하면 선교사로서 정식 자격은 주어지지 않지만 인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저희 목사님과 결혼해서 인도에 선교사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 그 곳에서 의료팀과 함께 빈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값과 진료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있습니까?

▷ 인도에 매년 구정연휴가 되면 영파선교회라는 의료와 전도 팀이 저희와 함께 섬 지역을 돌면서 의료선교와 복음전도를 병행해서 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한국에서 오실 때 많은 약품들을 가져다주시고 특별히 안과 수술팀도 오셔서 백내장 개안 수술도 해주셨다. 그분들이 매달 적지만 후원을 해주고 계시다. 지금 이 시간도 그분들이 인도에서 사역 중에 계시는데, 그 분들을 통해 많은 환자가 병고침을 받고 또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특별히 기도 부탁드린다.

-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일을 해야하고, 그렇다면 아이들을 누군가는 대신 돌봐줘야할텐데... 그래서 탁아소 운영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 쪽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 인도에서는 여성들이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가난하다보니까 지참금을 많이 가져갈 수도 없는 형편이고... 그래서 지참금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매를 맞거나 심지어는 시집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시집에서 쫓겨날 때가 되면 보통 한두명의 자녀가 있게 마련인데, 한입 덜자고 어려운 형편에도 힘겹게 시집을 보냈는데 친정에서 딸을 받아들이면 형편이 더 어려워지니까 다른 형제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면 그들이 갈 곳이 없게되고... 자녀들도 어리다보니 아무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그들에게 저희가 쌀도 나눠주고, 옷을 가져가서 옷도 나눠주고 의료진료도 해주지만 그런 것도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제 마음이 참 안타까웠다. 어느날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생각을 주셨다. 그 아이들을 내가 맡아 봐주면 그 엄마들이 하루종일 남의 집에 가서 일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수입원이 생기니까 자기 자녀들을 돌보면서 같이 살 수 있겠더라. 그래서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놀이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가르치고 공부도 시키고 목욕도 시키고 점심을 먹인 후에는 낮잠도 자게 하는 식으로 해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참 감사한 것은 차츰차츰 한 명씩... 그 엄마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하게되고... 또 그 사람들이 전도를 해서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더 자라면, 저희가 작년부터 기숙사가 있는 초등학교를 세워서 영어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 아이들이 저희 학교에서 자라서 앞으로 인도를 위해 큰 일꾼들이 될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 배를 타고 섬 지역을 돌면서 빈민들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현지에서 활동하시기에 가장 어려운 점은 뭐가 있을까요?

▷ 많은 분들이 어려운 점이 무엇인가를 물으실 때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 고민해야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저는 개펄에 빠지면서 맨발로 걸어야 하지만 섬 사역을 무척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어서 좋고 또 섬은 공기가 맑아서 좋고... 별로 어려운 점은 없는 것 같다.

- 인도사람들에 대해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참 독특하다고 말합니다. 철학이 발달한 나라고 자기 스스로가 사실 그렇게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하는 데도 자기 인생에 만족하는 낙천적인 성품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인도사람들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 인도 사람들이 낙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힌두교인이다보니까 힌두교는 7번 윤회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어려움이나 배움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처해 있는 상황에 그냥 감사하고, 다음 생에 더 좋은 계급과 더 좋은 환경에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 지참금을 가져가야 한다면 인도에서도 대부분 아들을 낳으려고 하겠네요?

▷ 지금은 그런 일이 많이 없어졌지만 제가 87년에 인도 콜카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신문에 가끔 뉴스가 나올 때 딸을 낳으면 시집 쪽에서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남편도 찾아오지 않고... 그래서 버림받는 일들이 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어떤 때는 딸을 낳으면 아이가 숨을 쉬지 못하도록 해서 죽이는 일도 있고, 아니면 내다 버리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많이 변했다.

- 부군되시는 분이 인도 현지인 이시고 목사님이시고, 또 부군의 남자 형제들이 모두 한국인 여성들과 결혼을 했다면서요? 어떻게 이렇게 됐습니까?

▷ 제가 87년 2월에 콜카타에 도착해서 4월에 콜카타에서 크리캣 세계 결승전이 열렸다. 저희 목사님과 저, 그리고 우리 교회 청년 1명을 데리고 영어로 된 전도지 5000매를 가지고 인도 전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전도하러 갔었는데 제가 3가지로 놀랐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서로 와서 전도지를 받아가는 것에 놀랐고, 두 번째는 전도지가 한 장도 땅에 떨어져있지 않은 것에 놀랐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3사람 외에는 아무도 전도하러 나온 사람이 없다는 것에 또 놀랐다. 그래서 그때 제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예수님을 알겠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나라고 생각했다. 참 마음이 아팠는데 그 때 제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사람들이 이렇게 복음에 목말라 하는데 저희 두 사람의 힘으로는 다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아직 결혼 안한 3형제가 있는데 한국 자매들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일에 열심입니까?

만약 남은 형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한국의 자매들과 결혼하게 되면 일꾼이 8명이 되니 이곳에서 더 많은 주의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내 시동생이 결혼하게 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억나게 해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그래서 밑에 두 시동생도 목사님이시고, 사모님들도 다 선교사들이고 그리고 저희 큰 동서는 인도음악을 전공해서 평신도로 음악사역을 하고 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끝)

앵커=민경중부장
정리=김지영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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