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증권사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내년 증시가 상반기에 오름세를 타다가 하반기에 힘이 빠지는 전강후약(前强後弱) 흐름을 보일 것으로 관측했다. 올해보다는 소폭 나아지겠지만, 글로벌 금리·경기·정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내년도 녹록치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26일 국내 증권사 8곳의 내년 코스피 예상 범위를 종합한 결과, 지수 하단 평균은 2288, 상단 평균은 2781로 나타났다. 같은 날 기준 올해 연간 코스피 최저점 2180.67(1월3일)과 최고점 2668.21(8월1일)을 각각 소폭 웃도는 수치다. 삼성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이 내년 코스피 하단을 2200으로 가장 낮게 제시했고, 상단은 대신증권이 2850으로 가장 높게 제시했다.
이들 증권사 전문가 가운데 다수는 내년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둘러싼 시장 기대 등이 이어지면서 상반기에 지수가 오르다가 이후 상승 동력이 점차 약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내년 상반기 주식시장은 연준의 피봇(기준금리 인하로의 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도 상승 동력을 얻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기준금리가 내려가도 경제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고, 하반기로 갈수록 금리 인하 기대가 과도했다는 심리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도 "내년 1분기에 연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이어지면서 시장 분위기가 조금 괜찮다가 2·3분기에 다시 소폭 조정되고, 4분기에 횡보하는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반적으론 현 지수 대에서 변동성이 높은 박스권 장세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정 위원은 "시장은 연준이 내년 여섯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현실화 될 지는 물음표"라며 "금리가 많이 인하될 거라는 건 그만큼 미국 경기도 안 좋을 거라는 의미이기도 한데, 이게 시장에 반영됐는지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담은 최신 점도표엔 내년 세 차례 금리 인하가 예상됐지만, 시장에선 내년 3월부터 당장 인하 조치가 단행돼 11월까지 여섯 차례 연속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기준금리 뿐 아니라 내년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도 하반기 증시 흐름을 낙관하기 어려운 주요 변수로 꼽힌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 주식시장엔 연준 기준금리 인하와 기업 실적 개선 기대가 반영돼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완만한 상승 흐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오 센터장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하반기부터는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 구도가 예상되는 가운데 정명지 팀장은 "트럼프의 정책은 'ABB(Anything But Biden·바이든의 정책만 아니면 된다)'로 평가되는 만큼 당선 시 정책 불확실성이 커져 지수 상승은 어렵겠지만, 새로운 정책과 맞물린 테마주 주가는 상승할 수 있다"며 "바이든 재집권 시에는 주가 지수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강후약의 반대인 전약후강(前弱後强) 흐름 등 다른 증시 전망도 있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는 "내년 코스피는 전약후강 패턴이 예상된다"며 "상반기는 미국 경기 둔화 우려 속에 등락이 불가피해 보이나, 하반기는 경기 회복과 금리 인하가 맞물려 강한 상승세가 기대된다. 반도체가 주도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인터넷, 자동차, 2차 전지가 가세하며 견고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연준 전망과 시장 기대의 차이를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내년 1분기에는 지수가 조정될 수 있다"며 "이후 결국 금리 인하가 되고 한국 반도체 수출, 기업 실적 개선 영향으로 2~3분기에는 상승세가 상대적으로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4분기에는 (미국 대선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시장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26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08포인트(0.12%) 오른 2602.59에 마감했다. 연말 증시 훈풍 속에서 증권사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잔액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CMA 잔고 총액은 74조5210억 원으로, 작년 말 57조5036억 원 대비 17조 원 넘게 불어났다. 강세장을 예상하고 투자 기회를 엿보는 이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증권사로부터 빌리는 주식매수자금으로서 이른바 '빚투' 지표로 여겨지는 신용거래융자 잔액도 22일 기준 17조5379억 원으로, 지난달 6일 16조5767억 대비 한 달 반 사이 1조 원 가까이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