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인 26일. 그곳에는 여전히 화마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이날 오전 서울 도봉구 방학동 23층짜리 아파트 벽면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가 시작된 3층은 집안 내부까지 검게 탔고, 유리창마저 사라진 모습이었다. 바로 위인 4층과 5층 베란다도 일부 소실됐다.
이날 아파트 단지에 있는 경로당에는 임시대피소가 마련돼 있었다. 이재민들은 이곳에 들러 임시 거처를 문의하기도, 도시락을 받아가기도 했다. 이날 기준 9세대 25명의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물과 도시락을 비롯해 기초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모텔 3군데를 지정해서 숙소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한 곳에서 불과 3층 떨어진 6층에 거주하는 송민호(62)씨는 "매캐한 냄새가 나서 자다 말고 깼다"면서 "깨서 우리 집사람하고 아들한테 빨리 나가자 그래서 문을 열고 나오니까 유독가스가 확 나오는데 그러다 죽겠더라"고 전했다.
송씨는 "어제도 가래를 뱉으니까 새까만 침이 나오더라"면서 "지금도 가슴이 조금 답답해서 병원을 한번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화재가 난 아파트 16층에 사는 윤모씨는 "타는 냄새가 아니고 합선된 냄새가 나서, 우리집 전기장판을 급하게 껐다"면서 "그런데 밖을 보니 연기가 나고 소방차가 오고 난리가 났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윤씨는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더니 '나가지 말라'고 그래서 부모님 얼굴을 계속 물수건으로 막으면서 기다렸다"면서 "부모님은 괜찮으시고 나는 연기를 흡입해서 응급실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3층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날 오전에는 경찰과 소방당국의 합동감식이 시작됐다.
수십 명의 감식반 대원들은 작업복과 마스크로 무장한 채 장비를 들고 아파트 주변을 오갔다. 화재가 발생한 동으로 진입하기 이전, 이들은 둥글게 모여 감식 전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감식을 앞둔 경찰 관계자는 "오늘 합동감식은 어제 사고의 사고 원인과 발화 부위를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 경찰 소방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분들이 합동감식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총 21명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제 저희가 감식을 한 토대로는 301호에서 발화가 시작된 거로 추정을 하고 있다"면서 "오늘 감식은 정확히 301호 내에서 어디에서 발화가 시작됐는지 발화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리스라인이 쳐진 화재 현장 인근에는 감식에 동원된 드론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인근 주민들은 감식 현장을 힐끗거리며 지나갔다.
화재가 발생한 건너편 동에 거주하는 윤춘상(68)씨는 "어제 새벽 5시 2~30분에 지하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구급차가 꽉 차 있어서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면서 "사망하신 분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5일 오전 4시 57분쯤 해당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경상자도 27명 발생했다.
불이 난 3층 바로 위인 4층에 살던 30대 남성 A씨는 2살 아이를 포대에 넣어 던진 후 7개월 된 아이를 안고 뛰어내렸지만 결국 숨졌다. 아이들은 모두 살았고, 뒤이어 뛰어 내린 A씨의 부인도 목숨을 건졌다.
소방 당국에 가장 먼저 신고한 30대 남성 B씨도 목숨을 잃었다. 10층에 거주하던 B씨는 가족들을 모두 대피시킨 후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B씨가 대피 중 연기를 흡입해 숨진 것으로 보고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부검 1차 소견으로 이들의 사인이 각각 '추락에 의한 여러 둔력 손상', '화재 연기 흡입에 의한 화재사'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날 경찰청 관계자는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와 관련해 서울 도봉경찰서 강력1팀 등 3개 팀을 투입하고 집중 수사 중"이라며 "1차 현장 감식, 변사자 검시, 관련자 조사 등을 진행했고 오늘 변사자 부검, 합동 감식을 실시하는 등 화재 원인과 경위에 대해 면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