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괴물 투수'의 행선지는 가닥이 잡혔다. '코리안 몬스터'는 어느 팀 마운드에 오르게 될까.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MLB) 오프 시즌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MLB 최고 스타 오타니 쇼헤이(29)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왔고 지난 10일 LA 다저스와 계약 기간 10년, 총액 7억 달러(약 9117억 원)에 합의하며 전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 계약을 맺었다.
한국 최고 외야수 이정후(25)는 아시아 야수 최고액 계약을 맺으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는 15일(한국 시각) "이정후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463억 원)에 합의했다"며 "2027년 시즌 후 옵트아웃 신청 가능 조항을 포함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오프 시즌 '투수 최대어'로 꼽힌 일본 괴물 투수 야마모토(25·오릭스 버펄로스)도 빅 리그 팀을 찾았다는 소식이 22일 들려왔다. 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이날 "야마모토가 다저스와 12년 3억 2500만 달러(약 4232억 원) 규모의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제 한국 야구 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류현진(36)으로 향한다. 류현진의 야구 인생 후반부는 어느 팀과 함께하게 될까.
행선지 결정 늦어지는 이유는 '나이·부상'?
류현진은 이번 시즌이 끝난 뒤, 지난 2020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맺은 4년 계약이 종료됐다. 지난달 한국 시리즈가 진행될 당시 서울 잠실구장을 찾아 향후 거취에 대해 "윈터 미팅이 끝나고 12월 중순쯤이 되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언급한 12월 중순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계약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어깨 수술과 팔꿈치 수술 등 부상 이력 역시 행선지가 결정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은 지난 2013년 6년 26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다저스로 이적해 MLB 무대에 데뷔했다. 올해까지 10시즌을 치른 베테랑 투수지만 부상에 이은 수술과 재활 탓에 2015, 2016, 2022, 2023시즌을 온전히 치르지 못했다. 최근 8시즌 동안 100이닝 이상 마운드에 오른 시즌도 3번 밖에 되지 않는다.
2번의 토미존 수술…이겨내고 복귀 성공한 류현진
그럼에도 류현진은 이번 시즌 기나긴 부상에서 복귀해 무난한 활약을 보여 빅 리그 경쟁력을 입증했다. 사실 류현진의 복귀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류현진은 지난해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1년 넘게 자리를 비워야 했다. 특히 이 수술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인천 동산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지난 2004년, 같은 수술을 받은 적 있다.
30살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와 2번이나 받은 큰 수술 탓에 부정적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류현진은 이를 뒤엎고 마운드 복귀에 성공했다.
재활 후 올해 11경기에 나서 3승 3패라는 무난한 성적을 남겼다. 평균자책점은 3.46을 기록했다. 주 무기인 체인지업과 느린 커브가 인상적이었다.
MLB 통계 사이트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류현진이 올해 던진 공 830개 중 395개가 스트라이크 존 근처인 '섀도 존'에 들어갔다. 섀도 존은 스트라이크 존 경계선 안팎으로 공이 1개씩 들어가는 너비의 구간을 말한다.
이는 투수의 제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류현진이 부상 복귀 후 구속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어도 정교한 제구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몬스터'의 경쟁력은 여전…"RYU, 효과적 투구 유지했다"
현지에서도 류현진의 경쟁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지 매체 '디애슬레틱'은 류현진을 노릴 만한 빅 리그 팀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를 선정했다. 예상 계약 규모는 1년 1100만 달러(약 143억 원) 정도다.
디애슬레틱은 "8시즌 동안 100이닝 이상 던진 시즌이 3차례에 불과하다"면서도 "30대 중반까지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인 투구를 유지했다"고 류현진을 평가했다. 이어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 계약을 하고 60경기 선발 등판해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샌디에이고 지역 매체 '이스트빌리지타임스'는 지난 22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반드시 투수가 필요하다"며 류현진을 추천했다. 해당 매체는 "후안 소토 트레이드로 많은 투수를 데려왔는데도 선발 로테이션은 깊이가 부족하다. 류현진을 추가하면 선발 로테이션 중간에 안정감과 경험을 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도 최근 류현진을 언급했다. MLB닷컴은 지난 18일 류현진을 아직 FA 시장에 남은 투수들 중 4, 5번 선발 로테이션을 채울 수 있는 후보로 분류했다.
지난달 27일엔 "류현진은 750구 이상 던진 투수 중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공의 비율이 47.6%로 MLB 공동 4위에 올랐다"며 류현진을 조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류현진을 올겨울 이적 시장에 나온 30대 중반 이상 FA 선수 중 '주목할 선수'로 평가하기도 했다.
베테랑 선발 계약 이어진다…시장 분위기도 '긍정적'
FA 시장 분위기 자체도 베테랑 투수들에게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마이너 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야구 생활을 그만두며 선수 층이 얇아진 것.
이로 인해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게 됐고, 빅 리그 구단들 역시 아직까지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이다. 특히 야수보다 투수 쪽 사정이 더 좋지 않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선발 투수진 뎁스를 보강하길 원하는 팀들이 늘어나며 MLB에서 실력이 검증된 베테랑 투수들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실제로 30대 중반이 넘는 선수들의 계약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번 시즌까지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뛴 일본 투수 마에다 겐타(35)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2년 24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세스 루고(34), 마이클 와카(32)를 각각 3년 4500만 달러, 2년 3200만 달러에 데려왔다. 또 웨이드 마일리(37)가 밀워키 브루어스로 향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랜스 린(36)과 카일 깁슨(36)을 영입했다.
한국 복귀 가능성도 없진 않다. 만약 류현진이 KBO 리그로 돌아온다면 원 소속팀인 한화와 먼저 협상한다. 한화는 류현진이 MLB로 떠날 때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을 허락하며 KBO 리그에서 류현진에 대한 보류권을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류현진의 대리인인 스콧 보라스는 "빅 리그 팀들의 관심이 매우 크다"며 한국행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이어 "내년에도 미국에서 공을 던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류현진의 야구 인생은 어느 팀에서 이어질까. 어느덧 베테랑 반열에 오른 류현진에 최전성기 모습을 기대하기엔 무리다. 그러나 아직 MLB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점은 이번 시즌을 투구를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한국 팬들이 아직 MLB 스토브 리그에 관심을 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