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시끄러운 인권위, 무슨 일 벌어지고 있길래

'여권 추천' 김용원·이충상, 전원위·상임위 보이콧…인권위 파행 불가피
소수자 혐오표현·사무처 힐난에 업무 마비까지…인권위원 자격 논란 일어
'소위원회 1명만 반대해도 진정 기각' 개정 추진에 안팎 우려 커져
직원들 "20여년 합의정신 지켜온 인권위 사상 초유의 사태…부끄럽고 무력감 들어"
시민사회 "김용원·이충상 인권위원 자질 없어…사퇴 촉구"

답변하는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파행의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김용원 상임위원과 여당 몫으로 국회가 추천한 이충상 상임위원이 있다.

두 상임위원은 그간 공개석상에서 인권위 박진 사무총장을 향해 "무식", "오만방자" 등 수위 높은 언사를 쓰는가 하면, 송두환 위원장을 겨냥해 "중언부언", "억지소리" 등의 발언을 내뱉었다. 심지어 인권위 조치에 항의하러 온 군 사망자 유가족을 향해 "(회의장에) 기어들어 왔다. 퇴장시켜라" 같은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김 위원이 위원장을 맡은 침해구제1위원회(침해1소위)는 지난 8월 1일 이후 활동을 멈췄다가 지난 1일에야 재개했다. 만장일치 없이 기각 결정을 내린 침해1소위 심의 결과에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사무처가 지적하자, "지시 불이행"한 직원을 인사 조치하라며 회의를 열지 않은 것이다. 이 사태는 결국 해당 국·과장이 스스로 장기 연가에 들어가고 나서야 일단락됐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18일, 이번에는 김 위원과 이 위원이 송 위원장에 대해 "좌편향"이라며 인권위 최고 의사기구인 전원위원회와 주요 정책 안건을 심의하는 상임위원회 출석을 거부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두 위원이 내부 혼란의 책임을 송 위원장 등에 돌리면서 인권위가 마비 위기에 놓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견 관철 위해 "회의 불참"…진정인이 볼모인가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김 위원과 이 위원은 지난 18일 오후 전원위 개최 전 입장문을 통해 "위원장의 좌편향 및 불법적 위원회 운영에 대해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했으나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며 "당분간 상임위와 전원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들은 지난 14일 상임위에서 박 사무총장에게 "송 위원장의 호위무사"라며 회의장 퇴장을 요구하다 본인들이 퇴장하기도 했다. 이날 김 위원은 "사무총장을 퇴장시키고 상임위와 전원위에 입장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앞으로 상임위와 전원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들이 회의를 거부하고 인권위 사무처와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8월 1일.

침해1소위원장인 김 위원은 당시 정의기억연대가 정기 수요시위 현장을 향한 욕설·혐오발언 등 인권침해를 막아달라며 제기한 진정을 기각했다. 문제는 심의 참석위원 3명 중 김 위원을 포함한 2명이 '기각'한 반면 나머지 1명은 '인용' 의견을 냈는데도 최종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소위원회 회의를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용 의견을 냈던 위원이 인권위 사무처에 재논의를 요청했고, 사무처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재논의를 추진했지만, 김 위원은 침해1소위 관련 직무를 거부하고 관계자 인사 조치를 요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를 두고 인권위 안팎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평가하고 있다.

인권위 출범 초기부터 일한 내부 관계자 A씨는 "과거에는 격론을 벌이더라도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해서 회의에 불참하는 등 일종의 '몽니'를 부린 사람은 없었다"며 "법으로 주어진 인원위원의 책무를 특정인의 인사 조처를 요구하며 직무 유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직권남용"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인권위가 22년 동안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적어도 의사 운영이나 회의 석상에서 기본적인 인권위법 적용을 두고 지금처럼 큰 이견을 보이며 갈등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어 "생각이 좀 다르더라도 합의제 기관으로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인권위법과 규칙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폭넓게 이해하면서 운영해 왔다"며 "(두 상임위원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확 뒤집으려고 하니 당혹스럽다"고 비판했다.

직원들이 익명으로 의견을 내는 인권위 인트라넷(사내망)에는 무력감을 호소하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한 익명의 인권위 관계자 B씨는 "아무리 비판한들 그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국제적으로도 민망한 상황이 됐음에도 자신들만 모르고 있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고 썼다.

또 같은날 올라온 게시글을 통해 익명의 인권위 관계자 C씨는 두 위원이 송 위원장이나 사무처, 시민단체 등을 겨냥한 보도자료를 발송한 일에 대해 "상임위원실에서 배포되는 보도자료가 직무 수행의 일환이고 공적 행위라면 전 직원이 공람할 수 있도록 하라"며 "지극히 자연인으로서의 개인 주장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나 상임위원 등의 수식어나 위원회 서식은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송 위원장을 향한 "좌편향" 발언에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두 상임위원이 인권위원장을 좌파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빨갱이' 즉 '너는 내 편이 아니야'의 다른 말"이라며 "나의 적이고 죽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편 가르기에 나서고 당파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스스로 인권위원으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끊이지 않는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의 자질 논란


한덕수 국무총리(왼쪽)·이충상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연합뉴스

결국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을 앞두고 지난 8일 출범한 '경로이탈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두 위원의 자질을 문제 삼으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 위원은 임기 시작 이후 공식 석상에서 노동자·군인·이태원 참사 유족의 권익 보호와 배치되는 주장을 펼치거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표현을 했다는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태원 참사에서 참사 발생과 관련해 구조적인 문제는 없다"며 "밀려 넘어져 발생한 사고인 이태원 참사가 국가권력에 의해 시민을 고의 살상한 5·18민주화운동보다 더 귀한 참사냐"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입법 권고 안건으로 올라오자 "불법행위자 보호법 내지 불법행위 조장법"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군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같은 계급, 같은 기수끼리 훈련을 받기 때문에 내무반에서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인권위원의 발언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인 "기저귀 찬 게이"라는 혐오 발언을 해 인권위 안팎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한편 군인권보호관이기도 한 김 위원은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신청한 해병대 박정훈 대령 항명죄 수사·징계 중지 등 긴급구제 요청을 기각하고, 군인권센터가 '외압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난 9월, '윤일병 사건' 유가족을 포함한 군 사망 사건 유가족이 김 위원을 항의 방문했는데, 김 위원이 유가족을 상대로 '보복'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항의 방문 한 달여 뒤인 10월 10일, 김 위원은 윤일병 사건의 사망 원인을 조작한 실체를 밝혀달라며 유가족이 지난 4월 제기했던 진정을 돌연 '각하' 결정했다. 김 위원은 항의 방문했던 유가족에 대해서도 특수감금·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수사 의뢰한 상태다.

김 위원이 맡고 있는 '군인권보호관'은 2014년 육군의 사인 조작·은폐 시도가 있었던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군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설치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2021년 공군이 성폭력 사건을 방치해 피해자가 숨진 '이예람 중사 사건'으로 결국 군인권보호관이 만들어졌다.

시험대 오른 국가인권기구의 합의정신


지난 10월 김용원(대통령 지명)·이충상(국회 여당 선출) 상임위원과 한석훈(국회 여당 선출)·한수웅(대법원장 지명)·김종민(대통령 지명)·이한별(대통령 지명) 위원 등 6명은 소위에서 한 명만 반대해도 진정이 자동 기각되도록 하는 내용의 내부규칙 개정안건을 발의했다. 앞서 벌어진 '만장일치' 논란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이에 전임 인권위원과 인권위 정책 자문위원들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인권위 임무가 약화될 것이라며 현행 의결방식을 고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 헌법재판관인 김이수 정책 자문위원장 등은 "규정의 해석과 소위원회 운영은 합의정신의 존중과 민주주의 원칙하에 진정인의 권리 보호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최영애 전 인권위원장 등 전임 인권위원들은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는 인권위의 임무를 크게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소위원회 의결 방식 변경 추진에 대해 반대한다는 공식 의견서를 인권위에 냈다.

인권위 관계자 A씨는 "인권위가 합의제 기구인 만큼 의견이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설득하고 합의해 가는 게 우리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의견이 다르다면 심급을 올려서 숙의해 절충안을 만들어가는 합의제가 기본적인 틀"이라며 "한 사람이 반대하기 때문에 기각하겠다는 식의 주장은 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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