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방금 전해 드린 강제동원 2차 소송 승소 소식, 외교부 출입하는 김형준 기자와 더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일단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 볼게요.
[기자]
기본적인 골격은 5년 전, 그러니까 2018년에 일본이 반발해서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빌미로 삼았던 1차 확정판결과 같습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맺으면서 우리가 일본 식민지로서 받았던 피해에 대해 일본에서 이런저런 지원을 받았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포스코가 있고요. 그것에 대해서 국가간의 청구권은 소멸됐지만, 개인간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겁니다.
[앵커]
개인 피해자의 청구권, 살아 있다.
[기자]
네, 대법원 판단은 이렇습니다. 2018년 확정판결에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최종적으로 명확하게 밝혔다"는 거죠.
[앵커]
그게 2018년 판결문에 들어 있는 내용. 국가 청구권협정에 개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기자]
네, 맞습니다. 그걸 변곡점으로 삼았는데, 이 판결 선고로 인해서 비로소 우리나라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적 구제의 가능성이 확실하게 됐고, 그 전까지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단 거죠.
[앵커]
일본 정부는 뭐라고 하나요?
[기자]
당연하다 해야 할지 적반하장이라고 얘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일본 총리 비서실장 겸 정부 대변인격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브리핑에서 입장을 밝혔습니다.
"매우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한일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고,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항의한 바 있다"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일본 외무성 나마즈 히로유키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오늘 판결 뒤에 도쿄 우리 대사관에 있는 김장현 정무공사를 초치해서 항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하야시 관방장관은 브리핑에서 지난 3월에 우리가 발표한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언급하면서 "원고들에게 배상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외교부도 오늘 관련 언급을 했는데요, 임수석 대변인의 오늘 정례브리핑 내용입니다.
"오늘 판결에 대해서도 지난 3월 발표한 강제징용 확정 판결 관련 정부 입장에 따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원고 분들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방침입니다."
[앵커]
제3자 변제 방안은 굉장히 논란이 많았잖아요.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았어서.
[기자]
맞아요. 외교부 당국자가 오늘 기자들과 만나서 한 얘기가, 앞으로 설득 작업을 다 진행을 하겠다. 그런데 그게 언제부터가 될지는 아직 이야기하기가 이르대요. 준비가 좀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자들이 여러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했어요. 주된 내용은 이겁니다. 판결금과 관련해서 일본 기업의 참여가 전혀 없는데 박진 외교부 장관이 올 3월에 컵에 물이 반은 찼다고 하는데 도대체 나머지 반은 언제 차느냐, 이런 식의 질문을 계속했거든요.
이 당국자가 대답한 게, 그래도 정부 '해법' 발표 이후에 중단됐던 한일간 정부 협의체와 각 부처간 협의체가 복구됐고 오늘 오후에도 8년만에 한일 고위경제협의회가 열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국가적인 이익일 순 있겠습니다만 피해를 본 개인들 입장에선 사실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김 기자가 이 자리에서 여러 번 얘기했던 내용인데 한미일 안보협력 때문에 다소 무리하게 이런 '해법'을 추진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지 않습니까. 그것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없나요?
[기자]
뭐 안보협력이 꼭 필요한지 문제는 일단 둘째치고, 정부 내부적으로는 이번 판결이 안보협력에 끼칠 영향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지난 1차 확정판결, 그러니까 2018년 판결을 말합니다. 그 때도 재단을 통해서 판결금을 지급받은 분이 15명의 원고 중에 11명이 지급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 기각이 되긴 했지만 공탁까지 하면서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계속 표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 측에서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게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가해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강제 현금화 조치예요. 그런데 이게 안 되고 있습니다. 왜 안 되고 있느냐, 방금 전에 말씀드린 공탁의 유효성을 다투는 소송이 지금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아직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입니다.
"한일 관계의 어떤 큰 불안 요인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다만 이 '해법' 자체가 완전한 '해법'이 아니고 지금 현재도 '해법'을 거부하신 분들이 있으시고, 또 관련해서 이 '해법'에 대해서 동의를 하신다고 하더라도, 재원 마련이라고 하는 부분이 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과제를 남겨두었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뭐 당장 다음 주에도 또다른 강제동원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어서 이 판결이 이어질수록 어떻게 될지 추이는 좀 봐야겠습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걸린 재판에서 승소한 우리 원고분들의 반응도 사실 궁금한데, 이번 판결의 원고 분들 다 돌아가셨어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건 사회부 임민정 기자가 오늘 원고들의 유족, 그리고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늘 연 기자회견에 다녀와서 전해드리는 내용입니다. 방금 말씀하셨지만 2018년 판결의 원고 분들은 아직 소수 살아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이번 판결의 원고 분들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우선 이분들은 지금까지의 강제동원 판결 중에 가장 두텁게 피해자를 보호하는 취지로, 매우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고요. 다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듯이 2018년 판결 이후로 5년이나 흐르는 등 늦었지만, 또 귀하게 지켜나가야 할 판결이라고 밝혔습니다.
근데 나름대로 또 걱정이 있으시다고 해요. 변호인단 측 임재성 변호사 말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부담스러워하세요. 제3자 변제를 받지 않는 게 마치 지금 정부와 대립하는 듯한 구도 아닙니까, 지금 정부의 정책을 강제동원 피해자가 거부하는 듯한, 그러니까 정부와 맞서는 나의 선택이, 한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을지 일본 기업에게 계속 배상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하면서 돈을 받을지에 대한 선택을 넘어서서 정부와 맞서는 선택인 것처럼 느껴지시고 있었습니다."
[앵커]
자신들의 이런 노력이 정부에 맞서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부담스럽고 속상하다 이런 말씀이신 거예요.
[기자]
제가 민족문제연구소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 하나만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오늘 방송 마무리할게요.
이번에 승소한 원고, 고 오길애씨 동생 오철석씨가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읽어 드릴게요.
"누님은 1944년 12월 7일 지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한과 분노 때문에 저는 도쿄 올림픽을 하던 해 도쿄를 방문해서 한일회담 당시 김종필과 오히라가 비밀 회담을 했다는 요정까지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이 손을 마주 잡고 과거의 잘못을 털고 좋은 관계로 발전해 가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덮고 가려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