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4%가 넘는 금리로 사업자대출을 받은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 최근 1년간의 해당 대출 이자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은행권의 상생금융안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금리인상기에 역대급 이자 수익을 누려온 은행이 고금리에 따른 민생고를 외면해선 곤란하다는 비판 여론이 상당부분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다만 혜택이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집중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비롯해 다양한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금리 4% 넘는 자영업자에 1인당 평균 85만원 '이자 캐시백'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주요 은행장들은 21일 오전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2조 원 규모의 은행권 민생금융 지원방안(상생금융안)을 발표했다. 국책은행을 제외한 18개 은행들이 지원을 분담하는 상생금융안의 골자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 전날(20일)을 기준으로 최근 1년 동안의 개인사업자 대출 이자 가운데 금리 4% 초과 납부분의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대출액 한도는 차주 당 2억 원이며 초과 이자 납부액의 90%가 지급되는데, 최대 환급 금액은 300만 원으로 정해졌다.
예컨대 대출금이 3억 원, 대출 금리가 5%인 차주가 전날 기준 이자 납입기 간이 1년 지났다면, 환급액은 대출금 2억 원에 초과 이자 1%와 환급률 90%를 곱해 180만 원으로 계산된다. 작년 12월 21일 이전 최초 대출자의 경우 캐시백(환급) 대상 이자는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올해 12월 20일까지 1년 치며, 그 이후 대출자라면 캐시백 대상 이자는 대출일로부터 1년 치다.
당초 금리 기준 5%, 대출액 한도 1억 원, 환급액 한도 150만 원이 거론됐지만 그보다는 혜택이 확대된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30일 "마치 은행의 종 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발언으로 소상공인들의 상황을 설명한 뒤 더욱 거세진 당국의 상생금융 압박이 통한 셈이다.
은행권은 이번 발표안에 따라 대상 차주 1인당 평균 85만 원이 지원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약 187만명의 개인사업자에게 총 재원 2조 원의 약 80%인 1조6천억 원 수준의 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자 캐시백은 내년 2월부터 개시해 3월까지 집행도를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며, 나머지 4천억 원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될 예정이다.
당국 "2조 원, 은행권 최대 사회기여 규모"…전문가도 "고통 분담 긍정적"
진통 끝에 나온 은행권 상생금융안에 대해 금융당국은 호평을 내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총 지원액 2조 원은 지금까지 은행권의 민생경제 지원을 위한 사회적 기여에 있어 가장 큰 규모"라며 "이는 모든 은행이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진정성 있게 방안 마련에 참여해 이뤄낸 성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이 중지를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은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원 규모도 크지만 고금리를 부담한 차주들에게 직접 이자를 환급함으로써 실제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며 "(이번) 지원 방안을 계기로 은행이 고객과 동반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고, 상호 신뢰를 키워 따뜻한 금융을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은 규제 산업이고, 최근 최대 실적을 거두게 된 건 적극적 영업 확대보다는 금리 상승의 영향이 크다"며 "그런 수익을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차주들에게 환원하는 건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나친 관치의 결과물이라는 시장 일각의 불만에 대해선 "그런 인식과 여론의 인식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경기부진 환경 하에 금리도 높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금리 부담 완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자 캐시백이 이뤄지면 경기 부양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특정 차주 혜택 집중에 형평성 논란 뒤따라
다만 이런 긍정 평가 속에서도 "논란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2조 원 규모의 지원액 가운데 대부분인 1조6천억 원이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집중된다는 점은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한 학계 인사는 "고금리 상황이 소상공인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라며 "급여를 받고 생활하는 이들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논란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가급적 상생금융 혜택은 여러 차주들에게 두루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과 당국은 이자 캐시백 지원 자금 외 나머지 4천억 원을 취약계층에 대한 폭넓은 지원에 활용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금리 상승과 경기 부진으로 인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자영업자·소상공인이라고 판단돼 우선순위로 지원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금리(4%)를 기준으로 캐시백 대상을 정한 것에 대해 "신용평가제도와 맞지 않아 장기적으로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차주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데, 금리 4%를 기준 삼아 일괄 지원하는 건 문제"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은행권과 당국은 초과 이자 납부액의 90%를 돌려준다는 게 원칙이지만 은행별로 건전성 등을 감안해 해당 비율을 70%까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차주에 대한 잇따른 지원책이 자칫 가계부채 관리라는 정책 기조와 엇갈리면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