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초 악명높은 제로코로나 정책의 상징이었던 베이징의 한 임시 격리시설, 즉 '팡창(方艙)'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원룸으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컨테이너를 레고 블록처럼 쌓아올려 만든 이 격리시설은 지난해 7월 단 20일 만에 뚝딱 지어졌다.
당시는 전세계가 위드코로나로 전환하던 시기였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봉쇄조치를 오히려 더 강화했고, 팡창은 이렇게 역주행하던 중국 코로나19 정책의 산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밀접접촉자, 또는 밀접접촉자의 밀접접촉자라는 이유로 생계를 중단한채 끌려가 위생 상태가 열악한 컨테이너에 기약없이 갖혀 지내야 했다. 때문에 당시 팡창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런 팡창에 비록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자발적으로 월세를 내고 들어가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중국에서도 코로나19의 종식을 알리는 '상전벽해'와 다름없는 소식이다.
코로나19 사태 3년은 중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암흑기 그 자체였다. 악명높은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됐고, 수시로 반복되는 봉쇄조치로 생계마저 위협받았다.
아무 설명도 없이 수시로 시행되는 봉쇄조치로 인해 오랫동안 중국에서 생활한 교포들 뿐만 아니라 기업, 정부, 공공기관에서 파견나와 객지생활을 한 주재원과 그 가족들의 고통도 극에 달했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경우도 많았다. 일부 주재원은 한국에서 자녀가 태어났는데도 출입국이 제한돼 몇개월 동안 아기 얼굴도 보지 못했다. 또, 부부 가운데 한쪽만 중국으로 건너온 주재원과 동반 자녀의 경우 몇년 동안 남편, 그리고 엄마나 아빠 얼굴을 못본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이 3년이나 이어지다 보니 가뜩이나 예전에 비해 인기가 크게 떨어진 중국 주재원은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며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됐다.
실제로 중국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제로코로나를 포기하고 위드코로나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재원을 희망하는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재원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후임자가 없어 자의반타의반으로 중국에 머물러 있던 주재원들이 하나둘씩 한국으로 떠나고 새로운 중국 주재원들이 속속 중국땅을 밟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다행스런 일이다. 중국이 위드코로나로 전환한지 1년여가 지나면서 앞서 언급한 팡창의 사례처럼 제로코로나의 악몽이 차츰 옅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주재원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한국 본사와 중국 지사간 교류가 재개돼 중국에 출장온 직원들이 바뀐 중국의 분위기를 보고 전하면서 중국 주재원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인적 환경의 변화 속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중국한국상회도 암울했던 지난 3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상회는 지난 1993년 설립된 중국내 유일한 한국계 법정 경제단체로 중국에 진출한 3천 5백여개의 한국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중국 내 43개 지역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상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상회가 우리 기업과 중국 정부.기업간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우리 기업의 애로 사항과 건의사항을 중국 측에 전달하고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 한국상회의 설립 이유이자 존재 이유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각 기업의 주재원 교체기와 맞물려 한국상회 상임부회장 교체 소식도 들려온다. 한국상회 상임부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중국으로 파견하는 베이징사무소장이 당연직으로 맡고 있는 직책이다.
한국상회 회장이 각 기업의 중국 지사장이 돌아가며 맡아 겸직하는 한국상회의 '얼굴' 역할이라면, 상임부회장은 실질적으로 한국 기업과 중국측 사이에서 실무를 총괄하는 '손발' 역할을 하는 핵심 직책이다.
따라서 한국상회 새 상임부회장으로 중국을 잘아는 중국 전문가가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국상회와 그 회원 기업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박기락 베이징 한인회장 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베이징협의회 회장은 "위드코로나 전환 이후 중국의 비지니스 환경이 코로나19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면서 "특히, 중국 한중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상회 상임부회장에 한국 기업들의 손발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국 전문가가 임명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상회 한 관계자도 "그동안 거쳐간 상임부회장 가운데 가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경우도 있지만,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 생각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면서 "이번에는 중국 비즈니스 환경을 잘 알고 한국 기업의 니즈(Needs)를 채워줄 수 있는 전문가가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