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유명 관광지인 '피어(Pier) 39'에서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약 4km를 걷다 보면 붉은색 벽돌 담장과 마주한다.
주변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MLB) 역대 최초로 양대 리그에서 사이영 상을 수상한 우완 투수 게일로드 페리, 히스패닉계를 대표했던 강타자이자 내야수 올랜도 세페다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힘차게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의 최고령 MLB 명예의 전당 회원인 윌리 하워드 메이스 주니어의 동상도 있다.
이곳은 바로 내년 시즌부터 한국 최고 타자 이정후(25)가 활약하기 시작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 구장, '오라클 파크'다. 오라클 파크는 23년 전인 2000년 4월 개장했다. 이 야구장은 MLB 30개 구장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닷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찬 기운이 돌기 일쑤지만, 그 덕분에 절경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특히 오라클 파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있다. 바로 '스플래시 히트'다.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이 날린 홈런 볼이 구장 우측 펜스를 넘어가 경기장 밖 매코비만(灣) 바닷물로 빠지는 것이 스플래시 히트다. 홈런에 신난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물에 보트를 띄우고 홈런 볼을 건져내는 유쾌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정후 역시 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19일 오후 귀국한 이정후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스플래시 히트가 유명하다고 한다. 저도 왼손 타자니까 (스플래시 히트를)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오라클 파크의 이색적인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구조마저 특이하다. 부채꼴 모양으로 이뤄진 보통의 야구장과 달리 이 경기장의 외야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처럼 각을 품고 있다.
우선 홈에서 좌중간 펜스까지의 거리는 111m인데, 더 깊은 좌중간 펜스가 존재한다. 거리는 122m로 측정된다. 또 중앙 펜스까지는 119m로 거리가 짧은 데다, 펜스 모양이 둥글지 않고 직선 형태다.
가장 독특한 건 우측 외야다. 홈에서 우중간 펜스까지 거리는 126m로 외야 중 가장 긴데, 우중간에서 우측 폴까지 연결되는 펜스는 급한 경사가 지어져 있다. 펜스 높이도 6~7m로 높은 편이다.
즉 우측 담장을 넘기는 타구를 치기 위해선 타자들의 더 큰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인접한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해풍마저 홈런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이정후 역시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 오라클 파크를 방문해 입단식을 치른 이정후는 이날 "우측은 짧게 느껴지긴 했는데 엄청 많이 높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우중간은 깊이가 깊고 넓어서 제 장점을 살리면 저한테 더 잘 맞는 홈 구장이 될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타자로서 이정후의 장점은 콘택트 능력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이정후는 모든 방향으로 공을 때려낼 수 있다. 이 능력은 외야가 넓은 오라클 파크에서 특히 유용할 것"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이정후도 "저는 홈런 타자가 아니고 좌·우중간을 잘 갈라서 칠 수 있는 선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이 모형을 지닌 오라클 파크 외야는 외야수인 이정후가 수비를 할 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정후는 "외야 좌중간까지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같은 느낌이 나서 괜찮을 것 같은데 우중간은 더 깊고, 펜스도 높고 벽돌로 돼 있어서 타구가 어디로 튈지 몰라 신경을 잘 써야 할 것 같다"며 자세하게 전했다.
사실 이정후가 오라클 파크에 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키움 히어로즈 선수 시절 방문해 본 경험이 있다.
이정후는 "견학으로 오라클 파크에 방문한 적이 있다. MLB 구장에 간 건 처음이었는데 무척 좋았다"며 당시를 돌이켰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은 야구장으로 손꼽히는 구장 중 하나이기도 한데,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하다', '웅장하다',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정후가 새롭게 선수 생활을 시작할 홈 구장 오라클 파크에서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이정후의 말대로 오라클 파크의 독특한 구조를 자신의 장점으로 잘만 활용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