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수조 원대 의약품 유통업체가 지정된 물류센터가 아닌 야외 주차장에서 상차와 분류 작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무방비로 의약품 상차작업을 강행해, 시민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 안전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평일 오후 부산 사상구의 한 주차장.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의약품 광고를 부착한 승합차 여러 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곧이어 의약품 상자를 빼곡하게 실은 대형 화물차가 들어오자, 직원들은 이를 승합차로 쉴 새 없이 옮겼다.
우비를 입은 직원들은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내일 새벽까지 비가 온다는데 어떡하냐"며 곤란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익숙한 손길로 빠르게 수많은 상자를 분류해 차에 실었다.
실외 주차장에서 분류와 상하차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의약품이 들었을 수많은 상자는 내리는 비에 무방비로 노출돼 그대로 비를 맞고 있었다. 심지어 작업을 위해 상자를 비로 젖은 맨바닥에 두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의약품 도매와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A업체가 이처럼 지정된 장소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는 야외 주차장에서 의약품을 배송 차량에 옮겨 싣고 있어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북구와 사상구의 민간 야외 주차장에서 의약품 분류와 상하차를 하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됐다.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상하차 작업은 그대로 진행됐다. 하얀 비닐로 상자들을 둘러싸기도 했지만 비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고, 이마저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의약품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질병 치료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개발과 제조부터 유통, 판매, 투약까지 모든 단계를 엄격히 규제·관리하고 있다.
의약품은 습기와 온도 등에 의한 변질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시민 안전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통해 법률로 의약품 유통과 판매 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현행법에는 의약품이 유통되는 과정에서의 관리 규정도 별도로 명시돼 있다.
'의약품 유통품질 관리기준'(KGSP)은 입고부터 보관, 출고, 운송 등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 의약품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한 온도와 습도 유지 등 유통 규정을 상세하게 명시한다.
하지만 앞선 경우 작은 지붕이나 가림막조차 없이 완전히 개방된 야외에서 분류와 상하차 작업이 이뤄져 온도나 습기 등에 의약품이 변질될 위험성이 크다.
수조 원대 매출을 올리는 대형 의약품 업체가 이처럼 버젓이 관련 법 규정을 무시하고, 원칙에 어긋난 방법으로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라 큰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A업체 측은 "작업을 위한 창고 등 장소를 구하려고 했지만 아직 구하지 못해 6개월가량 임시로 주차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관련 법 규정에 의약품을 출고한 뒤 운송 과정에서 분류와 상하차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의약품 유통 관리에 허점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운송 중에는 저장 온도 유지와 다른 물품과 동시 배송 금지, 안전장치 등 규정이 정해져 있지만 분류와 상하차가 이뤄지는 환경이나 장소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규정에서 분류나 상하차 등 세부 작업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진 않지만, 출고에 따른 운송 과정에서 저장 온도를 유지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출고와 운송을 위한 준비행위는 원칙적으로 해당 도매상의 창고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