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누(NANU‧이윤노 대표)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Plastic-Free)을 꿈꾸며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하지만 나누가 사용하는 원료는 다르다. 그동안 폐지나 목재 펄프가 주원료였다면, 나누는 감귤 껍질, 왕겨, 낙엽 등과 같은 천연소재를 활용한다.
이윤노 대표는 "소각되거나 버려지면서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천연소재를 이용해 친환경 용기를 제작하고 있다"며 "버려지는 자원을 업사이클링해 두 번째 기회를 부여해 쓰레기로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며 사뭇 의미심장한 포부를 밝혔다.
나누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친환경 펄프몰드는 사용하는 원료의 특성상 인체와 환경에 무해하다. 또 재활용이 가능함은 물론 소각하거나 매립 시에도 환경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세계적으로 강력하게 규제되고 있는 스티로폼과 플라스틱의 대체제로 유럽에서는 이미 실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펄프 몰드는 통기성 및 흡수성이 높고 안정성이 뛰어나며, 다양한 모양과 색상으로 생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나누의 펄프몰드는 종이 대비 뛰어난 단열성과 강도로 식품 용기를 대신할 수 있다. 친환경 코팅액의 열융착 밀봉 기술로 100% 밀봉이 가능해 식품 유통에도 적합해 식품 대기업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물과 오일이 잘 스며들지 않는 재질로 화장품 용기에도 활용될 수 있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농심은 유럽에 수출하는 사발면 용기(스티로폼)를 펄프몰드로 대체하는 방안을 나누와 추진하고 있고, 빙그레, 유한킴벌리, 하이트진로, 제일제당 등과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누는 현재 안산 한양대내에 모든 공정이 한 번에 이뤄질 수 있는 생산설비를 갖추고 내년 대량 생산을 앞두고 있다. 3년 전 자본금 500만 원으로 시작한 나누의 현재 기업 가치는 80억 원에 달한다. 나누의 2026년 매출 목표는 300억 원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나누는 지속 가능한 삶과 좀 더 깨끗한 지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름은 이윤노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어떻게 창업을 생각하게 됐나.
A. 서울의 한 병원 기획팀에서 보건 전문가로 일 했었다. 주 업무는 병원의 해외 진출이나 해외 의료진들의 국내 연수 같은 걸 담당했었다.
한 번은 코로나 직전에 코이카와 함께 남미로 출장을 가게 됐다. 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바닷가에 쌓여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곳은 비가 오면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었다. 빗물에 쓸려 내려간 쓰레기가 강으로 가서 그대로 바닷가에 쌓이거나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불에 탄 비닐과 플라스틱 재가 화산재처럼 날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뛰어 노는 모습이었다.
플라스틱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됐고, 코로나로 모든 해외 사업이 취소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꿈꿔 왔던 창업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 때 마침 중국에서 우리나라 폐지 수입을 제한하면서 폐지 값이 떨어졌고, 폐지 줍는 노인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단순하게 폐지로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면 안될까 생각했다. 정말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게 첫 시작이었다.
Q. 창업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A. 처음에 폐지를 이용해 용기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사업 설명서를 써서 정부, 지자체할 것 없이 막 돌아다녔다. 당연히 다 떨어졌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문제는 기술이었다.
심란한 마음에 자문이라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펄프몰드'라는 게 있었고, 국내에는 충남대학교에 이 기술을 연구한 분이 딱 한 분 계셨다.
곧바로 자문을 받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고, 그렇게 지금의 기술 이사님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만류했다. 그래도 계속 찾아갔고, 네 다섯 번의 자문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도 상당히 발전했다. 그 때 신한 스퀘어 브릿지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이 열렸다. 스타트업하고 대기업이 만나는 장이었다.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스티로폼 용기를 대체할 친환경 용기를 찾던 농심이 관심을 나타냈다. 교수님을 설득했고, 마침내 공동법인을 설립해 함께 하게 됐다.
펄프몰드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교수가 함께 한다는 소식에 업계도 떠들썩했다. 게다가 농심이 붙으면서 빙그레 같은 대기업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Q. 처음 계획했던 원료는 폐지였다. 그런데 어떻게 농업부산물(천연 재료)로 바뀌게 된 건가.
A. 교수님가 가지고 있는 기술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여러 원료를 이용해 펄프몰드를 만드는 기술과 펄프몰드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후가공 작업, 즉 코팅 기술이었다.
교수님은 펄프몰드 제작 공정은 워낙 설비가 비싸기 때문에 스타트업인 나누와는 코팅 작업만 함께 하려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교수님이 가지고 있던 메인 기술인 펄프몰드를 만드는 게 처음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거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제주에서 신한 스퀘어 브리지가 열렸다. 이미 교수님으로부터 제주 감귤 껍질로 펄프몰드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들었던 저는 귤 껍질을 활용한 펄프몰드 제품을 만들겠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냈다.
덜컥 선정이 됐고, 1억여 원의 사업 자금과 제주에 있는 신한금융그룹의 인프라를 지원받게 됐다. 또 다시 교수님을 설득했고, 그렇게 전 과정을 함께 하게 됐다. 이후에 CJ제일제당에는 왕겨를, 하이트진로에는 맥주박을 활용한 천연소재 포장제를 개하게 됐다.
Q. 감귤 껍질 포장제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나.
A. 제주도로서는 감귤 껍질이 1년에 5천 톤 이상 나오는 데 산성이 높기 때문에 그냥 버릴 수 없는 골칫거리다. 그런데 저희가 1년에 800톤을 가져다 쓰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30% 정도는 몰드를 만들기 위한 펄프와 원료를 뽑아내고, 65% 정도는 친환경 멀칭제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나머지 3% 정도 산성이 높은 오일 엑기스는 화장품 회사에 판매해 거의 100% 활용하고 있다.
감귤 껍질 800톤으로 한 달에 30만 개의 친환경 완충제를 만들 수 있다.
말 그대로 소각되거나 버려지면서 또 다른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감귤 껍질을 친환경 용기로 만들 수 있다. 버려지는 자원을 업사이클링해 두 번째 기회를 부여하며, 쓰레기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Q. 현재 경영 상황은 어떤가.
A. 처음 펄프몰드를 만드는 공정은 고온과 많은 물, 느린 생산 속도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스타트업인 나누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이 과정을 바꾸기 굉장히 어려웠는데, 수많은 연구 끝에 혁신 버전이 개발됐다. 혁신 버전인 '페이퍼 몰드'다.
혁신 버전은 설비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 나누가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안산에 200평 규모의 공정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제주와 천안 공장에 있는 설비가 모두 이전되면 안산 공장에서 모든 공정이 가능해진다.
Q. 그동안 위기는 없었나.
A. 창업 과정의 순서가 반대였다. 보통은 기술이 있는 창업자가 공장을 만들고 설비를 구축한 상태에서 샘플을 만들어 바이어들을 만난다. 이게 기본적인 프로세스인데 몇 십 억을 투자했는데 안 팔리면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게 리스크다. 반대로 연구소 시제품만 들고 바이어를 찾아다니면서 설비를 갖추고 공장을 세팅하고 있다. 이 경우는 제품이 나오기까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두 경우 모두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스타트업에 위기는 항상 있다. 대표의 역할을 크게 네 가지로 보는데, 첫 번째가 비전, 두 번째는 자본, 세 번째는 팀 빌딩(building), 마지막은 위기가 왔을 때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기술과 자본, 팀 셋 다 없이 시작해서 항상 위기였다.
자본같은 경우 자본금 500만 원에서 시작했다. 현재 나누의 기업 가치는 80억 원이다. 쉽지 않았다. 제 돈 500만 원밖에 안 들어가 있으니까 다 가져와야 했다. 정부 지원 과제, 기업 투자 다 가져와야 한다. 법인 통장이 0원이 된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항상 자본적인 문제가 크다. 올해 또 공장 설립하는 데 한 20억 정도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면 저는 10억 원을 만들어야 한다.
팀은 공장이 가동되면 품질 관리는 누가 할지, 마케팅은 누가 할지, 수출은 누가 담당할지 사람을 찾는 게 저의 역할이다. 하지만 언제 망해도 이상할 거 없는 스타트업이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진 않다.
돌발 변수도 리스크다. 지난해 여름 물류창고에 곰팡이가 핀 적이 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전량 폐기했다. 식품 용기이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곰팡이가 날 수도 있고, 고객이 받자마자 생길 수도 있어 무조건 전량 폐기했다.
Q. 스타트업으로 어려운 점은 없나.
A. 지금 거의 양산 단계까지 왔는데 대기업 전산에 나누가 안 떴었다. 나누가 매출 실적이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실적을 증명할 게 없었다. 그래서 나이스에 기업 신용평가를 의뢰했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나왔다. 부족한 숫자를 맞추느라 고생했다.
Q. 누군가 스타트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A. 횟수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그 사람을 설득하고 잡는 게 대표의 역할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설득을 당할 때는 너무나도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저는 그런 기회가 왔을 때 목숨 걸고 퇴사하고 창업했기 때문에 좀 절박함 같은 게 있었다. 성 교수님께 자문 받으러 가기 전에 국내 웬만한 펄프몰드 공장은 다 가보고 갔었다. 교수님이 말하는 업체를 다 제가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 샘플도 받아봤다. 그런 모습을 교수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직접 움직이고 발로 뛰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특히 대학생들이 사무실 안에서만 일을 하려는 경향이 좀 큰 것 같다. 인터넷이 발달했지만 직접 가서 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
Q. 경기도 등으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았나.
A. 공간적인 부분이 컸다. 경기 테크노파크(TP)에서 지원해 주는 사무실에서 1년 동안 있으면서 임대료 안 내고 지원금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었다.
특히 경기 TP 지원 사업을 잘 활용했다. 지원 사업이 세분화 돼 있고, 단계별로 분야별로도 잘 돼 있다. 열정과 품만 잘 팔면 다 활용할 수 있다.
예비 창업자부터 성장해서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될 때까지 지원을 해준다. 지원금도 처음에는 500만 원에서 1천만 원, 5천만 원, 2억 원 이렇게 늘어난다.
또 가급적이면 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것을 추천한다. 초기 단계에 담당자랑 친분이 쌓이면 그 다음 단계 담당자한테 추천을 해준다. 그러면 단계별로 지원을 받기가 더 수월해 진다. 경기 TP 거의 모든 부서가 나누를 알고 있을 정도다.
Q. '페이퍼 몰드' 사업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A.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삶에 관심이 많다.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제품 사용이 불편하고 비싸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다. 솔직히 별로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서 불편을 감수한다. 가치 소비, 착한 소비다.
사람들이 좀 더 좋은 품질의 친환경 일회용품은 좀 더 싼 값에 편리하게 이용하는 삶을 만드는 것이 사업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