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이렇게 추운데서 시위하고 삭발을 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올 겨울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 전국 각지에서 주최측 추산 8천여명의 의사들이 모였다.
대한의사협회는 '제1차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강한 유감과 함께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자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의료계는 전문가단체로서 10여년 전부터 정부에 필수의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일관되게 경고해 왔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하다 결국은 필수의료과의 몰락을 가져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11년에서 14년 이후 배출될 의사증원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의대증원만이 전가의 보도인 것처럼 의대증원만 일방적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막고자 14만 의사들은 유감과 분노의 뜻을 강력하게 표명한다"며 "아울러 정부가 소통과 협의 없이 확대 정책을 강행할 경우 강력한 최후의 수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며 파업 가능성도 언급했다.
대한의학회 정지태 회장도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드는데 두 배가 넘는 의사가 왜 필요하냐"며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학은 정원을 늘리면 등록금 수익이 생기니 이득이고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교 폐지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병원들은 6년 후부터는 싸구려 의료 인력을 다수 사용하게 되니 큰 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정말 국민이 원하는 질 높은 진료를 원하면 초저출산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석 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의대 증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은 세금 낭비이자 국가를 망칠 정책"이라며 "친일 부역자 처벌하듯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 인사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5명이 무대에 올라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과 광주서구의사회 길광채 회장의 삭발식도 진행됐다.
영하의 날씨 속 참석자들은 롱패딩에 '의대증원X'라 쓰인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 중무장을 한 채 집회에 참석했다.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집행부는 추운 날씨 탓에 발언 도중 연달아 기침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에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말고 합의해서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9.4 의정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의학 교육 당사자인 의대와 의전원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증원 정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의협은 이날까지 14만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진료거부)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정부가 의대정원 추진을 강행할 경우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파업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이 의협의 파업을 불법 행위로 간주하고 엄정히 대응한다는 방침인데다 여론 역시 싸늘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이날 오전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에 달하는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85.6%는 의협의 진료거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한편 의협은 총궐기대회 후 서울역까지 가두 행진을 진행한 뒤,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필수 범대위원장이 '대통령님에게 드리는 글' 낭독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