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봐도 알거든요. 입을 안 벌려도 입이 푹 내려앉은 얼굴을 보니까 '도와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년차 치과의사 최복습(34)씨는 치과 진료를 보기도 전부터 환자들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환자 A(73)씨와 B씨(68)는 치아 뿌리가 아예 없어 임플란트 등 치과 치료가 시급했고, C(71)씨는 이들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군데군데 충치가 있었다.
이 때문에 A씨와 B씨는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치과 진료을 받으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씨는 "(충치) 원인은 다양하다. 일단 양치질을 못하니까 충치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치아가 썩으면 홈이 생겨서 충치가 더 크게 진행된다"며 "식사할 때 치아가 아파서 음식을 입 안에 오래 물고 있다 보니까 충치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치아 상황이 심각해진 이들은 경기 화성시에 있는 한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이다.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이들은 이가 아무리 아파도 명확하게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별다른 진료를 받지 못한 채 한동안 방치됐다.
이런 상황에도 장애인 시설 측은 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시설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이상이 생기거나 (고통을) 호소하면 보호자분들에게 말씀드리고 병원을 가고 있는데, 그분들은 보호자가 따로 없어서 조금 늦게 치료했다"며 "(그럼에도) 시술 받기 전에 다른 병원에서 몇 차례 치료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다만 "간호사 한 분이 20명~25명 정도의 구강 상태를 점검한다. 저희가 (치아 관리를) 해드리려고 해도 (장애인들이) 싫어하니까 쉽지 않다"며 "지자체에서 시설을 방문해 치아 관리를 지원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해당 시설은 화성시청에서 시행하는 구강보건사업 대상에서 빠져 있다. 시 관계자는 "인력이 모자라 전체 장애인 시설로 사업을 확대하지 못했다"며 "(구강보건사업은) 영유아 구강보건사업과 같이 하는데 이쪽도 수요가 너무 많아 빡빡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뒤늦게 치과 병원을 찾게 되는 배경에는 터무니 없이 낮은 장애인 구강검진률 문제도 꼽힌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에 따르면, 장애인 구강검진 수검률은 6년째 20% 안팎에 머물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특히 2016·2017년 장애인 구강검진 수검률은 22%를 기록했다가 2018년 20.1% 2019년 21.1% 2020년 17.7% 2021년 18.4%로 오히려 낮아졌다.
장애유형 중에서도 유독 정신장애인은 구강검진 수검률이 낮은 편이다. 지난 11일 발표된 '2021년 장애유형별 건강검진 수검률'을 보면 시각·청각·안면장애 등 외부장애 장애인의 평균 비율은 18.7%, 신장·심장·호흡기장애 등 내부장애 장애인의 평균 비율은 16.6%지만 정신장애인의 구강검진 수검률은 13.6%에 불과했다.
그나마 정부와 국회가 장애인의 구강검진 수검률을 높이기 위해 내놓은 정책마저도 현장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는 다음 해까지 휠체어 체중계, 장애특화 신장계 등 장애인 건강검진용 장비를 따로 갖춘 '장애친화 건강검진기관'을 100곳까지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전국 15곳만 관련 사업을 개시했을 뿐이다.
하지만 따로 비용을 들여 장비를 갖춰도 수입이 늘지 않고, 현장에서 장애인 구강검진을 맡길 만한 전문 인력을 구하기도 어렵다보니 공모 신청 단계나 지정된 이후에 신청을 철회하는 기관들이 속출하면서 관련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민간에서 장애인들을 치과 병원과 연계해주는 사업도 시작됐다. 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무연고자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공공후견활동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정신건강전문요원협회는 지난 15일 경기 시흥시 임플라인치과의원과 업무 협약(MOU)를 맺어 현재까지 5명의 장애인 치주질환자를 발굴해냈다.
한국정신건강전문요원협회 장진주 사무총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건강 격차는 항상 우리 사회에 존재했고, 특히 동행 서비스가 필요하고 협조가 필요한 정신장애인의 경우 더욱 접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인식 부족, 정신건강전문요원 등 전문 인력의 부족, 동행서비스 부족 등으로 서비스 확대가 힘들며 관련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장애인 정책을 펼 때부터 장애인 당사자와 소통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전문의, 사회복지사 등 돌봄 종사자들조차 장애인의 치아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이경숙 교수(성인간호학 전공)는 "장애친화 건강검진 사업은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필수 장비 구매 내역 중 일부는 기관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도 있다"며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가진 분들과 적극적 소통을 통해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관에서 장애인 검진을 하는 인력의 어려움도 상당히 크다. 장애인 건강검진에 투입되는 인력에 대해 장애인과의 의사소통, 검진 기술 등 실무 교육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중부대학교 김기룡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치과 의사라고 해서 정신과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발달장애인들의 의사소통 특성, 행동적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소아를 위한 전문 치과 의사들이 있는 것처럼 발달장애의 특성과 요구를 고려해서 치과 진료를 할 수 있는 전문의들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